“정부가 다시 지갑을 열어야 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주말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IMF·세계은행 연차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을 겨냥해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재정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기존 IMF 정책 권고와 상반된 것이다.

세계 주요국 다시 재정확대로 U턴…"위기해법, 긴축 틀렸다"
시노하라 나오유키 IMF 부총재 역시 패널 토론회에서 “정부 부채가 많은 나라들도 빚을 내서라도 공공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은 이미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 확대 기조로 돌아섰고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도 긴축기조를 접고 확장정책으로 돌아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IMF가 재정 확대 처방을 들고 나온 것은 긴축이 ‘실패’했다는 반성에 따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IMF가 강력하게 긴축을 권고해온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은 다시 경기침체에 빠졌다. 디플레이션 위기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2015년까지 재정수지 균형을 달성하겠다며 긴축을 고집해온 독일 경제는 올 2분기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IMF는 또 통화정책만으로는 생산성 증가세 둔화와 잠재성장률 하락에 직면한 세계 경제를 되살리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양적 완화와 초저금리 등을 통해 수조 달러의 돈을 풀었지만 상당부분은 은행의 지급준비금이나 기업의 유보금 형태로 잠자고 있다. 투자와 가계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 규제 완화와 같은 구조개혁 과제는 정치에 발목이 잡혀 있다.

주민 IMF 부총재는 “세계 경제가 엄청난 수요 부족에 처해 있는데 누군가가 그 갭을 메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화정책만으론 안 되며 정부가 수요 창출에 직접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IMF는 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성장률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 및 잠재성장률을 제고시킬 것이란 설명이다.

IMF는 선진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지출을 1%포인트만 높여도 GDP는 한 해 0.4%포인트, 앞으로 4년간 1.5%포인트 높일 수 있다고 추산했다.

IMF 자문기구인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가 11일(현지시간) 발표한 공동선언문에서도 이런 점을 분명히 했다. IMFC는 “세계경제 회복이 지속되고 있지만 기대보다 회복세가 미약하며 하방위험은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많은 나라가 저성장과 고실업에 직면해 있다”며 “수요 진작과 함께 구조개혁을 위해 과감하고 야심찬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IMF의 재정 확대 권고에 대해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공공지출 확대에서 해답을 찾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공짜점심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