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웅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신호센터장은 대당 30억원이 넘는 기존 뇌자도(뇌의 자기장을 측정하는 장치)를 대체할 수 있는 원자 자력계 기반의 뇌자도를 미국 프린스턴대와 공동으로 개발했다. 한국표준연구원 제공
김기웅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신호센터장은 대당 30억원이 넘는 기존 뇌자도(뇌의 자기장을 측정하는 장치)를 대체할 수 있는 원자 자력계 기반의 뇌자도를 미국 프린스턴대와 공동으로 개발했다. 한국표준연구원 제공
2005년 서울대병원은 뇌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을 측정하는 장치인 ‘뇌자도(腦磁圖)’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뇌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기존 장비인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단층촬영(CT)도 뇌의 모양이나 질병 유무를 알려준다. 하지만 해부학적 정보를 얻는 데 그친다.

뇌자도는 뉴런 활동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으로 뇌의 기능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수술로 잘라내선 안 될 부분을 정확히 짚어줄 수도 있다.

뇌자도를 도입한 병원은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두 곳에 불과하다. 대당 30억원에 달하는 고가 장비이기 때문이다.

김기웅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신호센터장은 최근 미국 프린스턴대와 공동으로 기존 장치의 성능은 유지하면서도 경제성은 높인 원자 자력계 기반 뇌자도를 개발했다. 그는 “뇌자도는 뇌 기능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장치”라며 “도입 비용이 낮아져 앞으로 일선 병원 보급이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뇌에서 발생하는 자기장 측정

살아있는 생명체는 소듐(Na) 포타슘(K) 칼슘(Ca) 등 여러 가지 이온을 끊임없이 교환하면서 생체전기를 만들어 낸다. 몸에 전극을 붙여 심전도를 재는 게 이런 생체전기를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기반응이 일어날 때는 자기장도 함께 발생한다. 김 센터장은 “뇌와 심장 눈 근육 등 인체 여러 부위에서 미약한 생체자기장이 발생한다”며 “자기장은 전기를 측정하는 것에 비해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몸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이 매우 약한 신호라는 것. 뇌에서 나오는 자기장은 지구자기장의 1억분의 1, 심장 자기장은 10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교류 전원, 건물의 진동, 엘리베이터 움직임 등에 의한 자기 잡음도 섞이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자기장 측정 장치가 필요하다. 1980년대 개발돼 1990년 중반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한 기존 뇌자도는 초전도양자간섭소자(SQUID)라는 아주 민감한 센서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SQUID 센서를 냉각시키는 데는 고가의 액체 헬륨이 필요하다. 기존 뇌자도의 가격이 비쌌던 주원인이다. 헬륨 풍선 때문에 흔한 물질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사실 헬륨은 희소성이 높은 전략 물자다. 워낙 가볍기 때문에 지구 중력을 벗어나기 쉽고, 30년 내에 고갈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 센터장이 개발한 뇌자도는 액체 헬륨을 쓰는 SQUID 센서 대신 초고감도 원자 자력계를 이용한다. 원자 자력계는 이미 1960년대에 개발돼 지구자기장을 측정하거나 인공위성 자기장 센서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 그러나 생체자기장을 측정할 수 있을 만큼 감도가 높지 못해 그동안 의료기기에는 활용하지 못했다.

○뇌 활동 실시간 관측 가능

값싼 뇌자도 개발로 뇌 질병 진단과 연구에 큰 진전을 가져 올 것으로 예상된다. 뇌 기능을 분석하기 위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이 개발됐지만 완벽하지 않다. 김 센터장은 “fMRI는 공간해상도가 높아 아주 선명한 뇌 활동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시간해상도가 떨어져 2~3초 이상 지연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뇌 신경세포는 1000분의 1초보다 빠른 속도로 활동한다. 따라서 fMRI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 뇌 활동의 수많은 변화를 단 한 장의 정지 사진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뇌자도를 활용하면 실시간으로 뇌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며 “뇌자도가 뇌의 신비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