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공무원연금 개혁,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번에도 ‘셀프 개혁’이 돼 버렸다. 청와대 새누리당 정부가 핑퐁게임 끝에 공무원연금 개혁법안의 성안(成案) 주체를 당에서 안전행정부로 바꿨다. 개혁의 당사자에게 칼자루를 쥐여준다는 얘긴데, 정치하는 사람들 여전히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게 분명하다.

데자뷔다. 그러니까 7년 전,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1월30일 아침이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과 행정자치부의 박명재 장관이 국무회의가 열린 청와대 세종실 복도에서 설전을 벌였다. 유 장관은 당시 국민연금 개혁을 주도하던 복지부 수장으로서 공무원연금 역시 국민연금 개혁의 틀 안에 넣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해오던 터. 마침 한 포럼에 참석해 공무원연금발전위원회(연발위)가 내놓은 안을 “국민 한 명도 납득하기 어려운 안”이라고 맹비난했다.

연발위 소관 부처인 행자부의 박 장관으로선 기분이 언짢았을 것이다. 이튿날 국무회의 장에 들어서던 유 장관에게 왜 행자부 일을 복지부가 문제 삼느냐고 따졌고, 유 장관은 공무원연금에 대한 박 장관의 부실한 개혁 의지를 비난하면서 소동이 빚어진 것이다.

공무원을 관리하는 공무원 조직이 행자부다. 박 장관은 그 뒤 곳곳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은 시기가 아닌 내용이라며 국민연금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100만 공무원에게는 공무원과 국민이 공감하는 개혁안을 만들 테니 동요하지 말라는 이메일까지 보냈다. 그런 개혁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결국 국민연금만 급여율을 60%에서 40%로 낮추는 대대적인 개혁이 단행됐고, 공무원연금 개혁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은 첫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개혁을 그해 상반기 중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공무원 노조가 때마침 활활 타오르던 촛불에 올라탔다. 행안부로서도 다행이다 싶었을 것이다. 상반기 개혁 완료 발언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연발위원 28명 가운데 10명이 공무원 노조 측 인사로 채워졌다. 턱없이 후퇴한 개혁안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렇게 해서 1년여 국회에서 낮잠을 자다가 2009년 통과된 법안이 현행 공무원연금 체계다. 아주 조금 더 걷고, 아주 조금 덜 주는, 그것도 신규 임용 공무원에게만 찔끔 적용되는 ‘얼치기 개혁’이었다. 그 효과도 사라진 지 오래다. 올해부터는 다시 적자 폭이 커진다. 올해 2조5000억원에 육박하고 2020년이면 10조원을 넘어선다.

지난달 29일 안행부로 공을 떠넘긴 당·정·청 회의는 참 얼렁뚱땅했나 보다. 새누리당은 “왜 모든 사안을 당에 떠넘기느냐” “당이 다음 선거를 어떻게 치르라는 얘기냐”며 노골적인 보신성 발언으로 일관하자 청와대가 의외로 순순히 안행부로 화살을 돌려버렸다고 한다. 미리 입을 맞춘 결과일 것이다. 정작 개혁안을 만들 안행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없었고.

새누리당의 의뢰로 연금개혁 초안 작성을 주도한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초안을 만들 때는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강경한 안을 내더니 발표 시점이 되자 모두 꼬리를 내리고 달아나더라”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결국 공무원의 힘을 무서워하는 국회와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의 저항세력이라는 얘기다.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의미 있는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면 국가적 재앙을 막아낼 방법은 없다. 이런 개혁을 정권 말기에 처리해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2016년 4월 총선까지는 굵직한 정치 일정이 없지만 2022년 대선을 치르기 전까지는 매년 큰 선거 일정이 잡혀 있다. 선거를 치르며 개혁을 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100만 공무원들이 무섭긴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만 무서운가. 이번엔 그들의 노후 복지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온 국민들이 벼르고 있다.

안행부 개혁안은 이달 중순께 공개된다고 한다. 연금 납입액을 43% 올리고, 수령액을 34% 줄여야 한다는 연금학회 안이 또 얼마나 훼손될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안행부가 개과천선해 또다시 얼치기 개혁안을 내지 않길 바랄 뿐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