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정 "과학벨트 연구 자율성 보장, 사업 취지 살려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핵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을 그만둔 뒤 서울대 총장 선거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사진)를 지난 17일 만났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벨트 신동·둔곡 거점지구 개발계획 변경안을 우여곡절 끝에 15일자로 승인 고시했다. IBS 본원을 둔곡지구에서 엑스포과학공원 쪽으로 옮기고 각종 용지의 용도 및 면적을 변경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오 교수는 “변경안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면서도 “자꾸 예산이 줄고 당초 취지와 달리 사업이 진행된다면 과학벨트는 또 하나의 정부 산하 연구소를 만드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올 2월 돌연 IBS 원장직을 사임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2011년 초 맡은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임기도 1년 남짓밖에 채우지 못했다.

그는 “교수직 복직 시한(3년)이 다 됐고 (IBS 원장으로서) 여러 가지로 시달렸다.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해명했다. 또 “과학벨트는 독일 막스플랑크 등 선진 연구기관처럼 공직사회로부터 분리해 자율성을 토대로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를 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지난 학기 학부 신입생을 위한 일반물리 강의에 이어 이번 학기에 4학년 대상으로 ‘역사적 물리논문 탐구’ 강의를 하고 있다. “교과서에 몇 줄 나오는 상대성이론은 현대적인 맥락의 해석일 뿐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어떤 고민과 생각을 했는지 나오지 않아요. 여러 물리학 논문 원본을 읽어서 저자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고 연구하고, 주변을 설득했는지 느껴보라는 강의입니다.”

그는 국내 대학 현실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대부분 교수가 연구과제를 따 오고 논문을 쓴 다음 평가받기에 급급해 ‘어떤 인재를 길러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의 세계적 경쟁력은 연구에서 나오지만 이는 학제 간 연구에서 크게 기인합니다. 같은 과는 물론이고 다른 과 학생, 교수끼리 소통이 돼야 한다는 의미예요. 그런데 학과 간 소통이 안 되고, 연구-교육 간 중심이 너무 연구 쪽으로만 치우쳐 있어서 문제입니다. 심하게 말해서 교수들도 자기 살고 봐야 되니까…. 이렇게 되면 독창적 연구가 나올 수 없어요.”

서울대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공직 지향성이 아주 강한 학교예요. 태생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기는 힘듭니다. 앞으로 필요한 융합형 인재는 커뮤니케이션, 소통에서 나옵니다. 문제 풀고 숙제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런데 서울대생들은 서로 소통하는 데 좀 서툰 것 같습니다.” 역사물리논문 탐구 수업을 개설한 것도 학생들이 소통하고 발표하는 기술을 익혀보라는 취지에서다.

경기고-서울대 출신 천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과학자이자 행정가인 그는 지난 선거에서 총장추천위원회 등 학내 구성원 지지를 많이 받았음에도 이사회 표결에서 성낙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현 총장)에게 밀렸다. “인생에서 첫 패배 아니냐”고 묻자 “은근히 모르는 실패들이 많았다”며 웃었다. 또 “지난달 건강검진을 했더니 오히려 예전보다 모든 수치가 좋아졌다”고 홀가분해하며 “앞으로 학부 강의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