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은 CEO의 역량과 혁신의 자세, 영속기업을 만들기 위한 열정 등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물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주식시장에 입성하는 신규 상장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공모주 투자부터 상장 이후 주식투자에 이르기까지 투자자들은 알짜 기업 정보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한경닷컴]은 주식시장에 갓 데뷔한 신규 상장기업부터 상장승인 심사를 마친 기업들의 CEO들을 집중 탐구하는 시리즈물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알루미늄 표면 처리 제품을 소개하는 이제훈 파버나인 대표(54). / 사진제공= 파버나인
알루미늄 표면 처리 제품을 소개하는 이제훈 파버나인 대표(54). / 사진제공= 파버나인
생애 첫 승용차는 10년이 안 됐고, 20년 넘게 한 아파트에서만 산 사람. 이제 갓 주시식장에 첫 발을 뗀 한 상장사 대표의 이야기다.

승용차보다 트럭 운전이 익숙하다는 이제훈 파버나인 대표(사진·54)는 차에 대한 욕심도 없었지만 사업을 시작하면서 직접 제품을 실어 날라야 했기 때문에 트럭이 편했다. 21년째 살고 있는 아파트는 잠깐 이사를 고민하다가 결국 수리해 사는 걸로 결정했다.

"설비투자 빼고는 다 아낀다"며 겸연쩍게 웃은 그는 "더 많은 자금으로 설비와 기술에 투자하기 위해 상장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제조업하는 사람은 아낀 만큼 제품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

기업공개(IPO)시에도 이 대표는 자신의 보유지분을 구주매출하지 않고 보유하는 길을 선택했다. IPO에 따라 들어오는 돈을 모두 회사 몫으로 돌린 것이다.

26년간 '더 고급스러운 금속 표면'에 대해 고민해온 그를 지난 16일 인천 남동공단 본사에서 만났다. 공장 옆 그의 사무실은 흔한 화분이나 그림 하나 없이 단출하고 소박했다.

◆ 트럭 몰고 다니는 CEO "품질이 곧 신뢰"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이 대표가 금속 표면처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향 친구이자 회사 동료였던 한 사람의 영향이 컸다. 당시 금속표면 처리 엔지니어였던 그가 현재 오종철 파버나인 부사장이다.

1989년 다니던 회사를 나온 이 대표는 자본금 1200만원으로 금속 표면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이오정밀공업을 세웠다. 직원은 세 명, 설비는 천막과 고무대야, 화학제품이 전부였다. 이 대표는 직접 트럭을 운전해 업체를 방문하며 주문부터 배달까지 책임졌다.

그는 "당시에는 지금 같은 정부의 창업 지원도 없었다"며 "환경은 열악했지만 품질이 회사의 신뢰를 결정한다는 생각에 작은 주문 하나도 소홀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밤낮으로 트럭을 운전하던 사이 길바닥에서 시작한 금속 표면처리 사업은 10년도 안 돼 연매출 20억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천막은 사무실이, 트럭은 승합차가 됐지만 이 대표는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거래처를 찾아가 제품에 대한 주문을 직접 듣고 생산에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최고경영자(CEO)로서 최대 위기는 IMF 금융위기를 1년 앞둔 1996년에 찾아왔다. 당시 주 거래처가 경영 악화로 주저앉으면서 물량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회사는 결국 8억원의 부도를 맞게 됐다. 예상치 못했던 위기에도 회사를 살릴 수 있었던 건 이 대표가 강조해온 품질 기반의 '신뢰' 덕이었다.

이 대표는 "주 고객사의 주문은 끊겼지만 우리 제품을 믿고 써오던 나머지 고객사들과 신규 고객사들로부터 주문이 꾸준히 들어왔다"며 "금속 표면 처리 분야의 오랜 기술과 제품에서 비롯된 신뢰가 없었다면 당시 상황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태생부터 다른 회사의 기술력…"감성품질? 제가 만든 말이죠"

한 차례 큰 홍역을 앓고 난 이오정밀공업은 1997년 파버나인으로 법인전환하며 재도약에 나섰다. 이때부터 기술과 설비에 대한 이 대표의 '통 큰' 투자도 본격화됐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제조업체들이 중국의 값싼 노동력으로 눈을 돌릴 때도 그는 인천남동 공단에 8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세웠다. 알루미늄 표면 처리의 핵심 기술인 아노다이징의 자동화 설비도 구축했다. 덕분에 하나의 라인에서 다양한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대표는 "단순히 싼 가격이 아닌 다품종 고품질 제품에서 경쟁력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했다"며 "그 때부터 직원들에게 '감성품질'이란 말을 강조한 것도 우리 제품만의 경쟁력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성품질이란 눈으로 봤을 때 느껴지는 차별화된 고급스러움으로 이 대표가 직접 만든 말이다. 최고급 알루미늄 외관재 생산을 목표로 삼은 그의 의지가 담긴 말이기도 하다.

제품 경쟁력에 대한 이 대표의 확고한 의지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2002년 98억원에 그쳤던 매출은 2004년 300억원까지 뛰었다. 2001년 삼성전자 협력업체로 등록되면서부터는 TV프레임과 스탠드, 의료기기 외관재 등을 전문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지난 2월엔 삼성전자의 '2014 올해의 강소기업'에 선정되면서 경영적 지원도 받고 있다.
파버나인 TV프레임이 사용된 초고화질(UHD) TV / 사진제공= 파버나인
파버나인 TV프레임이 사용된 초고화질(UHD) TV / 사진제공= 파버나인
◆ 일본 파나소닉에 제품 공급 시작…또다른 日 대형사와 계약 진행 중

이 대표는 최근에도 신모델 수주를 위한 38억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감행했다. 기존 아노다이징 공법 외에 전착 도장 공법을 도입해 제품 다양성을 확보하고, 글로벌 고객 협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글로벌 강소기업이라는 파버나인의 목표와도 일치한다.

최근 이 대표가 일본과 중국에 발걸음이 잦아진 것도 글로벌 고객사 확보를 위해서다. 이미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7월부터 일본 파나소닉에 TV프레임을 공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일본 대형 전자업체들과의 계약도 순조롭게 추진 중이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협력업체라는 꼬리표가 주가 부진에 원인이 됐지만 글로벌 고객사 확보 측면에선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삼성전자의 핵심 파트너라는 점에서 해외 업체들이 파버나인의 브랜드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신뢰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꾸준히 글로벌 고객사를 늘려간다면 삼성전자에 집중된 매출 구조는 개선될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파버나인을 태생부터 다른 회사라고 소개한 이 대표는 이번 상장이 회사의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설비를 구축하고 나면 거래처가 요구하는 디자인에 맞춰 기술을 응용하는 게 관건"이라며 "26년간 한 길을 걸어온 파버나인의 기술 응용력은 금속 가공을 주 사업으로 하다 금속 표면처리에 뛰어든 회사들과 다르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글로벌 고객사 확보 이후엔 해외 생산 기지 구축도 추진할 예정"이라며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커가는 파버나인을 오랫동안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한경닷컴 박희진 기자 hotimp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