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치 시계, 롯데百 모든 점포서 철수
세계 최대 시계회사인 스와치그룹이 롯데백화점과 입점수수료율을 놓고 마찰을 빚다가 7개 브랜드 매장을 모두 철수시켰다. 해외 명품 그룹이 국내 유통업체와 입점 조건을 두고 갈등을 빚는 일은 종종 있지만 여러 브랜드를 한꺼번에 빼는 일은 이례적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스와치그룹코리아 계열의 론진, 라도, 미도, 해밀턴, 티쏘, ck, 스와치 등 7개 브랜드는 최근 롯데백화점의 모든 점포에서 철수했다. 이 중 론진, 라도, 미도, 해밀턴은 평균 100만~300만원대로 이른바 ‘준명품’으로 분류되는 고급 시계다. 티쏘, ck, 스와치는 가격이 최저 10만~20만원대에서 시작해 젊은층에 인기가 높다.

롯데 관계자는 “7개 브랜드는 원래 전국 모든 점포에 분산 입점해 있었지만 7월과 8월에 걸쳐 단계적으로 매장을 정리해 지금은 한 곳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스와치그룹의 전격적인 매장 철수는 입점수수료율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스와치그룹은 수수료율을 6~7%포인트 내려달라고 했지만 롯데가 계속 거부하자 철수를 결정했다”며 “롯데 입장에선 다른 입점업체와의 형평성 등을 감안했을 때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스와치그룹코리아의 전체 매출에서 롯데백화점의 비중은 5%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굳이 자존심을 접어가며 매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와치그룹은 현대, 신세계, AK 등 다른 백화점에도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했으나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와치그룹은 오메가, 브레게, 블랑팡 등 초고가 명품부터 스와치, 티쏘 등 저가 시계까지 18개 브랜드를 보유한 스위스 시계업체다. 한국법인은 국내 시계 시장의 급성장에 힘입어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722억원, 영업이익은 347억원으로 5년 새 각각 4배, 8배 이상 뛰었다.

스와치그룹은 2012년에는 롯데, 신라, 동화 등 국내 면세점에 수수료율을 최대 10%포인트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이때는 면세점들이 스와치그룹의 요구를 거의 그대로 들어줬다. 백화점에 비해 면세점에서는 시계 매출의 비중이 월등히 높아 스와치그룹이 ‘갑(甲)’에 가깝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스와치그룹과 롯데 간의 기싸움이 어떻게 결론날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론진, 라도, 미도, 해밀턴 등은 해외에서의 명성에 비해 국내 인지도가 낮고 최근에서야 적극적인 마케팅을 시작한 터라 한국 사업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계 브랜드 관계자는 “브랜드별로 백화점 매장 수가 거의 반토막이 나 마케팅에 지장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프랑스 샤넬은 2009년 화장품 매장 위치를 놓고 롯데백화점과 갈등을 빚다가 본점, 잠실점, 부산점 등 7개 주요 점포에서 철수했지만 결국 ‘롯데의 승리’로 끝났다. 3년 뒤인 2012년 수수료율을 소폭 인상하며 롯데 본점에 다시 입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