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국산 불량 철근, 건물안전 위협한다
사상누각(沙上樓閣)은 ‘모래 위에 지은 누각’처럼 무너지기 쉬운 상황을 빗댄 말로 기초의 중요성을 역설할 때 쓰인다. 이런 은유적 표현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철강재에 불량 제품이 사용돼 국민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내 철근 제조업체가 국산 롤마크(원산지·제조사 표지)를 위조한 중국산 철근 수입업체를 고소했다. 확인 결과 제품 중량이 기준치 대비 평균 13%나 미달한 불량 철근이었다. 99㎡(30평) 아파트에 약 5t의 철근이 사용되는데 만약 이 불량재를 사용한다면 약 650kg의 철근이 부족해지고 이를 25층 100가구 아파트 한 동에 대입하면 총 65t의 철근이 적게 투입된다. 그만큼 하중을 견디는 힘이 약해지는 건 당연하다.

아파트뿐만이 아니다. 사무용 고층건물, 교량 등의 뼈대로 사용되는 H형강, 후판 역시 부적합한 저가 수입 철강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대형시설은 다수가 이용하기 때문에 제2의 성수대교, 마우나리조트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부적합 철강재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면서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철강 유통업체를 조사해 한국산업표준(KS) 규격 충족 여부 및 KS 위변조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나섰다. 불량 철강재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이 수입 철강재에 대한 품질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기에 품질시험성적서 등록 여부 단속 권한이 있는 국토교통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건설기술관리법에는 KS 제품이 아닌 경우 일정량마다 품질검사전문기관에서 실시한 시험결과를 건설사업정보포털시스템에 등록하도록 돼 있는데 지난 5월23일부터 수입한 H형강 8만8476t 중 품질시험 이행건수는 단 77건, 총 필요한 횟수 1770건의 4.4%에 불과했다. H형강은 대부분 일본공업규격(JIS)으로 수입되는 만큼 이번 조사에서 적발 사례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정부는 안전에 대해 보다 확고한 의지를 갖고 실질적인 단속과 제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품질시험성적서 등록 관리 강화, 상시 점검 단속 등 수입·유통단계부터 정부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절실하다. 건설현장에서는 자재의 적합성 여부 등을 검토하는 감리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소규모 건축현장에서는 감리자의 품질 확인이 ‘옵션’이라는 점이다. 연면적 5000㎡ 미만이거나 5층 이하 건물로 연면적 3000㎡ 미만인 경우에는 감리자가 상주하지 않아도 되며, 강재시험성적표 확인도 추가업무로 분류돼 있다. 따라서 공사비 절감을 위해 저급한 품질의 수입 철강재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 건축주와 계약관계에 있는 ‘을’인 설계자가 감리업무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아 감리가 건축주의 요구대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부적합 철강재 사용 근절을 위해서는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는 감리공영제 도입 및 상주감리 범위 확대 등을 통해 관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주 마우나리조트, 아산 둔포 오피스텔 붕괴 사고 등은 부실공사와 더불어 부적합 철강재 사용이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건물붕괴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합 철강재 사용 근절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다. 건물이 붕괴된 후 그 책임을 누가 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붕괴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 철강 및 건설업계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이명재 < 중앙대 건축학 교수 mjlee@ca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