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하에 ABS·커버드본드 매입까지…'슈퍼 마리오' 예상 뛰어넘은 돈풀기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은 새 시대를 맞았다.” 사이먼 스마일스 UBS 웰스매니지먼트 최고운용책임자(CIO)는 4일(현지시간) 경제전문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ECB의 이달 금융통화정책회의를 이같이 평가했다. 기준금리 인하 외에 ECB가 선택한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커버드본드 매입을 두고 한 말이다. 미국처럼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는 전통 방식은 아니지만 시중에 돈을 더 공급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양적완화라는 분석이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ECB의 경기부양 조치에 글로벌 채권시장과 외환시장은 요동쳤다. 유로화 가치는 급락하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국채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로존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지 않으면 ECB가 결국 국채까지 사들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심리적 저항선 돌파…유로화 폭락

ECB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연 0.05%로 0.1%포인트 인하하고 다음달부터 ABS와 커버드본드 매입에 나선다고 발표한 뒤 유로화는 미국 달러화 대비 1% 이상 급락했다. ECB의 경기 부양 조치로 유로화 공급이 급격히 늘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이날 유로화 가치는 전일 대비 1.7% 하락한 유로당 1.292달러를 기록했다.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1.3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은 작년 7월 이후 14개월 만이다. 이날 하락 폭은 2011년 11월 이후 가장 컸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한동안 유로화 하락세를 예상한다”며 1.27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마일스 CIO는 “ECB의 조치는 유로화 하락을 이끄는 한 스푼의 꿀 정도가 아니라 꿀 항아리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사진)가 유로화 약세를 용인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에선 금융시장이 크게 반응한 것은 커버드본드 매입 결정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ABS 매입은 지난 6월부터 예측됐지만 커버드본드 매입을 예상한 정책기관과 금융회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ECB가 예상을 뛰어넘는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 것으로 시장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로존의 경우 공통된 국채가 없기 때문에 국채보다 유동성이 떨어져도 ABS와 커버드본드를 매입 대상으로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ABS와 커버드본드 매입 규모로는 최대 1조유로(약 1325조원)까지 예측되고 있다.

◆국채 매입 가능성까지 ‘솔솔’

이번 경기부양 조치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 ECB가 국채 매입까지 단행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ABS와 커버드본드 시장은 국채 시장보다 절대 규모가 작기 때문에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는 한계가 있다.

닉 비크로프트 삭소캐피털마켓 회장은 “ECB가 추가 경기부양 조치에 반발하는 독일 중앙은행과 갈등을 겪겠지만 연말께 미 중앙은행(Fed)이 시행하는 국채 매입 등과 같은 전면적인 양적완화를 발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로존의 낮은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면 이 같은 선택이 불가피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채까지 사들이는 단계가 완전한 양적완화”라며 “ECB가 일단 이 방안은 최후의 선택지로 남겨뒀다”고 설명했다.

ECB가 다음번엔 국채 매입 ‘카드’를 꺼내들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면서 유로존 국채금리도 하락세가 이어졌다. 독일의 2년 만기 국채금리는 전날보다 0.05%포인트 떨어진 연 -0.072%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연 -0.084%까지 떨어졌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2년 만기 국채금리도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이탈리아와 아일랜드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사상 최저치를 나타냈다.

■ 커버드본드

covered bond. 은행 등 금융회사가 주택담보대출채권 등 우량자산을 담보로 해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자산유동화증권(ABS)과 비슷하지만 발행 회사가 파산할 경우 담보자산을 팔아 우선적으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담보자산 처분으로 부족하면 발행회사의 다른 자산에서 변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으로도 불린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은행이 많이 발행해 왔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