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韓·日경제협력, 더는 미뤄둘 수 없다
정치적 갈등의 장기화로 인해 꽉 막힌 한·일 두 나라 관계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양국 경제계로부터는 경제 분야를 정치와 분리해야 하고, 철저히 경제논리에 입각해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 경제는 1960년대부터 대외지향적 개방화 정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자본과 기술 의존도를 높여 왔다. 일본 기술의 특징은 생산기술에 있다. 1970년대까지 일본은 서구로부터 도입한 기술에 크게 의존했는데, 일본 기업들은 도입한 기술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 기술에 내재된 비능률과 낭비요소를 철저히 제거하는, 이른바 ‘생산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 생산기술을 연구개발(R&D) 활동에서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 확대 적용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도입한 일본의 기술은 이렇게 생산기술이 체화된 상태의 기술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대외경쟁력 강화에 유리하게 작용한 면도 작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 기업으로서는 일본의 이런 생산기술을 더욱 철저히 벤치마킹해 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한편, 일본으로부터의 자본과 기술 도입은 왕성했던 데 비해 일본 시장에의 수출은 수입에 비해 크게 떨어져 대일 무역역조가 갈수록 확대돼 왔다. 또 한국 경제가 착실히 산업화를 진전시켜 결국에는 일본과 비슷한 산업구조를 갖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과 적절한 수준의 분업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한·일 양국 기업이 제3국에서 과당경쟁을 벌이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한·일 두 나라처럼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지면서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국가 간에는 필연적으로 협력과 경쟁이라는 양면성이 공존한다. 그런데 경쟁의 확대를 방치하면 교역조건 악화가 발생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경제발전도가 낮은 국가가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한·일 양국이 경쟁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협력관계를 확대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한국 기업의 대일 수출을 보면 B2C(공급자와 소비자 간) 거래는 증가가 더디지만, B2B(공급자와 공급자 간) 거래는 안정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말하자면 동일 산업 간 수평적 무역은 착실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B2B 거래가 확대되면 될수록 당해 산업을 유지·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그 산업에 소속된 기업은 한국 기업, 일본 기업 구분 없이 철저하게 합리적 협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만큼 한·일 양국 경제 협력의 장이 확대된다고 할 수 있다.

한·일 양국 산업 간에 이런 형태의 분업이 확대된다면 궁극적으로 양국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발전하고, 이 토대 위에서 제3국 공동 진출을 확대할 수 있으며 드디어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일 양국 기업이 B2B 거래의 확대에만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한·일 기업 간 수평적 교역을 확대·긴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에 진출한 양국 기업의 생산 활동에 필요한 부품류를 납품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 진출 기업을 포함한 양국 참여 기업들이 성장할 것이다. 또 동아시아 차원의 탄탄한 분업구조가 형성될 것이며, 이런 과정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기초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한·일 경제관계를 한 단계 더 긴밀한 협력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의 생산기술을 한국 기업 속에 더욱 튼튼하게 뿌리 내리게 해야 한다. 이 기반 위에서 한·일 양국 간은 물론이요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양국 기업 간 산업 내 수평적 분업을 확고히 구축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종윤 <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leejy@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