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부 肥大症을 우려한다
로마제국과 조선의 몰락에는 공통점이 많다. 로마는 이민족 게르만인에게 붕괴됐고, 조선은 이민족인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겉으로 드러난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두 국가 모두 이민족의 침입이었다.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쳐 보면 사회·경제적 구조 문제에 이른다.

로마나 조선은 모두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로마와 조선에서 가장 생산적인 노동은 노예와 예속적 농민들이 담당했다. 지배계층은 모든 육체노동이나 경제활동은 신분에 걸맞지 않다고 여겨 아래 계급에 맡기고 자신들은 정부 관료가 되는 것을 목표로 소비와 시문학 등에 주력했다. 노동을 하면 천한 신분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생산활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시문학 등에서는 발전을 이룰 수 있었지만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개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신분제로 인해 재산권을 보장받지 못한 계층은 적극적으로 부를 창출할 의욕을 가질 수 없었다. 지배계층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권력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자체의 비능률과 부패로 인해 백성들의 조세부담은 점점 가중됐다. 자연히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사회가 점점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황폐해진 상황에서 로마는 게르만족의 침입을 받아 무너졌고, 조선은 당시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끝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두 국가의 역사는 현대 사회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물론 현대 사회는 신분제 사회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국가의 역사는 생산을 담당하는 부문보다 그것을 소비하는 부문이 더 크면 그 사회는 쇠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 사회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부문은 민간부문이고 이것을 가져다가 소비하는 부문은 정부부문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정부부문이 민간부문보다 커지면 국가의 장래에 커다란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지금 한국 정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가 공무원 수가 1960년 약 20만명에서 1993년 약 90만명, 2003년 약 92만명으로 늘었고, 2013년 100만명을 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 비율은 1996년 21.8%에서 2013년 33.1%로 증가했다. 정부 산하와 유관기관인 공공기관까지 포함한다면 정부 규모는 더욱 커진다. 공공부문 부채와 금융공기업 부채를 합한 국가채무는 2135조원으로 GDP의 1.67배다.

큰 정부의 문제는 단순히 정부 지출과 공무원 수 증가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커짐으로써 파생돼 나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다. 정부가 커지면 지출이 증가하므로 그에 맞춰 세금을 올려야 한다. 자연히 민간부문의 조세부담이 늘어난다. 게다가 정부가 커지면서 규제가 많아지게 되면 기업의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규제가 많아지면 이를 회피하는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정치인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로비활동을 하며 부정부패가 만연해진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3년 부패인식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177개국 중 46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4개국 중에서는 27위로 하위권에 속해 있다. 지난번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관피아’가 이를 잘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커지면 정부 권력을 이용해 자기 몫을 챙기려는 지대추구행위가 증가한다. 사람들이 생산을 통해 소득을 증가시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정부의 시혜를 통해 소득을 늘리려는 행위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자원배분의 왜곡을 낳고 우리 사회의 부의 창출을 막는다.

이런 것들은 모두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들이다. 지금 한국 경제가 성장 동력을 상실하고 오랜 기간 장기침체에 빠져 있는 것이 커져 가는 정부와 결코 무관치 않다. 계속 정부가 커져 가면 경제는 종국에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큰 정부로 가는 추세를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 교수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