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에서 여죄수 벨마 켈리 역을 맡은 배우 최정원.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뮤지컬 ‘시카고’에서 여죄수 벨마 켈리 역을 맡은 배우 최정원.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60세까지 ‘시카고’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한국 뮤지컬의 ‘자존심’이자 ‘간판’인 배우 최정원(45)이 2~3년 전부터 뮤지컬 ‘시카고’를 언급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다. 극 중 나이 많은 ‘마마’ 역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싶었다. 최근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만난 최정원은 손사래를 쳤다.

“당연히 지금 하고 있는 ‘벨마 켈리’ 역으로죠. ‘마마’는 100세까지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하하.”

‘시카고’는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온 두 여죄수 벨마와 록시가 주인공인 ‘투톱’ 뮤지컬이다. 록시가 섹시하면서도 사랑스럽다면, 벨마는 섹시하면서도 강한 힘을 뿜어낸다. 뮤지컬 명장면으로 꼽히는 ‘올 댓 재즈’ 삼각 군무의 꼭짓점에서 춤을 이끈다. 영화 ‘시카고’에서 캐서린 제타 존스가 맡았던 역이다.

“벨마는 많이 하면 할수록 더 잘할 수 있는 역인 것 같아요. 60세 때쯤 제가 표현하는 벨마가 지금보다 멋지지 않을까요.”

최정원은 ‘시카고’ 한국 공연을 대표한다. 열 번의 제작 공연에서 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다. 2000년 한국 초연에선 록시였고, 2007년부터는 벨마였다. ‘대체 불가능한 벨마’라는 찬사를 받았다. 내달 28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계속되는 올해 공연에서도 벨마로 매회 무대에 선다.

이번 시즌 ‘벨마 최정원’은 작년과는 또 다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친다. 벨마가 록시에게 듀엣을 결성하자며 꾀는 장면. 최정원은 손 짚고 옆돌기와 다리를 머리 위로 차올리는 ‘킥’ 등 고난도 동작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노래를 부른다. 객석에서 환호와 탄성이 터져 나온다.

“공연의 연출과 안무가 바뀌면서 벨마의 춤동작이 달라졌어요. 작년엔 이 장면에서 우아한 발레 포즈를 취했죠. 제가 원래 텀블링을 잘해서 두 번 연속 돌 수도 있어요. 60세가 돼도 자신 있어요. 하하.”

10여년간 해온 만큼 작품에 대한 이해와 깊이도 남달랐다. ‘시카고’는 춤과 노래, 촌극이 어우러지는 미국 버라이어티 무대쇼인 보드빌 형식으로 드라마를 완성해 나가는 독특한 작품이다. 최정원은 “형식이나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내용이나 우리의 마당놀이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참신한 분석이다.

“‘마당’이 펼쳐지면 별다른 세트나 의상 없이 배우는 연기와 춤과 노래로 관객을 웃기고 사로잡아야 합니다. 배우의 노력과 열정, 역량이 무대에서 그대로 드러나요. 뮤지컬 배우의 모든 것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어요. 제가 이 작품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최정원은 1989년 데뷔 이후 ‘출산 공백’을 제외하고는 줄곧 무대에 섰다. 20여년간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30대나 40대 중반인 지금이나 외모와 목소리가 한결같다. ‘비결’을 물었다.

“체력과 건강 관리는 기본이고요. 뻔한 소리 같지만 무엇보다 장인 정신을 가지고 제 일을 즐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공연 마지막에서 록시와 함께 ‘살고 싶은 인생 찾아 원하는 대로 살아요’로 시작되는 노래를 불러요. 행복도 꿈도 열정도 누구한테서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이어지는 커튼콜에서 매번 울컥해요. 정말 좋고 행복해서요.”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