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귤이 탱자가 되는 이유
유럽의 여러 나라를 투어 형태로 여행하다보면 다양한 한국인 현지 가이드를 만난다. 이들은 한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현지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영국 가이드는 품위 있는 말투를 쓰고 귀족적인 몸짓을 하려 한다. 프랑스에 가니 패션이 매일 달라지고 예쁜 말투를 쓴다. 이탈리아로 넘어가니 남자 가이드라서 그런지 몰라도 목소리가 크고 성악가 같다. 말하는 태도도 정열적이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동네사람 대하듯 인사를 한다.

독일에 들어서면 이런 점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독일 하면 병정, 자동차, 질서가 떠오른다. 독일어는 이히(ich), 아흐(ach) 발음이 많아 절도(節度)가 있다. 말을 많이 하면 배가 고플 지경이다. 눈만 돌리면 여기저기 쓰여 있는 ‘아흐퉁(Achtung·주의)’이라는 단어만 계속 따라 발음해도 소화가 된다. 독일 현지에서 만난 여자 가이드는 절도와 박력 그 자체였다. 이탈리아 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졸린 사람은 눈치보지 말고 자라는데, 독일의 가이드는 졸지 말고 일어나란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변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변한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옛날 중국 춘추시대에 ‘강남의 귤을 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橘化爲枳)’라는 말을 보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닌 듯싶다. 사람뿐만 아니라 제도도 나라마다 다르게 기능을 한다.

같은 중앙은행이라도 어느 나라에 있느냐에 따라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미국 중앙은행은 대공황의 기억 때문에 실업을 중시한다. 반면 유럽중앙은행은 1차 세계대전 후의 초인플레이션 트라우마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호주의 퇴직연금을 모두 배우자고 하지만 퇴직연금의 출발점이나 운용 문화가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스웨덴을 배우자고 하지만 스웨덴은 사회주의의 기초 위에 도입된 제도를 갖고 있다. 독일의 통일 사례를 배우자고 하지만 독일도 유로통합이 없었다면 어디까지 어려움을 겪었을지 모를 일이다.

한 나라의 제도나 그 성과가 물 건너 올 때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우리는 그러한 면을 쉽게 간과하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는 것보다는 우선 우리 스스로를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질적인 답은 우리에게 있다.

김경록 <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grkim@miraeass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