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깁슨  ‘무제’(1980년)
랄프 깁슨 ‘무제’(1980년)
작은 거울 속에 얼굴이 있다. 살짝 벌린 여인의 입이 무언가 얘기를 하려는 듯하다. 초현실주의 사진의 거장 랄프 깁슨의 작품이다. 구도는 단순하다. 거울과 손 그리고 희미한 배경이 흑백의 대비를 이룰 뿐이다. 분명 이 장면은 일상의 일부지만 낯설고 기묘하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어느새 여인의 미소 짓는 입술에 이끌려 상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녀는 누굴 보고 속삭이고 있는 것일까. 거울 속 여인은 이미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말을 걸고 있다. 깁슨은 이처럼 삶의 일부를 통해 현실 너머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고은사진미술관 11월19일까지)

신경훈 편집위원 nicer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