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제2롯데월드, 이럴 거면 뭐하러 허가했나
하긴 롯데라고 처음부터 껌이나 과자만 만들고 싶었겠는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얘기다. 1993년 초 그를 롯데호텔 집무실에서 만나 서비스업에 평생을 걸게 된 배경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가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사업은 제철이었다고 한다. 일본에 용역을 주고 인력을 뽑아 제철소 건설 준비를 마친 뒤 정부에 신청서를 넣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제철은 정부가 맡겠다며 프로젝트를 박태준 씨에게 넘겨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자료와 사람을 몽땅 포항제철에 넘긴 뒤 손을 털었다.

다음은 자동차와 정유다. 자동차는 파트너로 잡은 도요타가 한국 정부의 괘씸죄에 걸려 실패했고, 정유는 제2정유공장 사업자 경쟁에서 럭키에 밀렸다. 롯데의 기간산업 진출 꿈은 그렇게 좌절되고 말았다. 신 회장은 그때 서비스산업을 전문분야로 삼아 결코 한눈을 팔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유통 호텔 쪽으로 빠르게 보폭을 넓힌 이유다.

그렇다고 서비스사업은 순탄했을까. 아니다. 규제 탓에 늘 고생을 해야 했다. “일본은 관공서 일도 자동으로 처리되는데 한국은 시간도, 비용도, 사람도 너무 많이 든다.” 신 회장의 당시 하소연이다.

제2롯데월드가 그런 경우다. 제2롯데월드는 당시에도 롯데의 최대 현안이었다. 안 팔려서 절절매던 서울시 땅을 사들였는데 1년 내 착공하지 않았다고 비업무용이라며 강제매각 조치가 내려졌다. 소위 ‘5·8 부동산 조치’다. 설계에만도 3년 넘게 걸린 사업이다. 대법원에서 비업무용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고, 토지매각 조치가 해지되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그뿐인가. 건축물 고도제한을 둘러싼 공군과의 논쟁에는 더 긴 시간이 허비됐다. 애초 항공기지법상 비행안전구역에 포함되지 않는 지역이다. 온갖 검토결과를 제시해도 조종사들의 심리를 내세운 공군은 난공불락이었다. 2008년 이 사안이 대표적인 기업규제 사례로 논의돼 돌파구를 찾기까지는 무려 13년이 걸렸다.

건축허가를 받기 위한 교통영향심의 등 서울시 송파구 등으로부터 받아야 했던 도장이 300여개다. 수정보완 요구에 맞춰 제출한 서류는 셀 수도 없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최종허가가 나온 게 2010년, 부지를 매입한 지 23년 만이다.

그 제2롯데월드가 요즘 다시 논란거리다. 건설 중인 123층 빌딩 옆에 완공한 저층부 3개 쇼핑몰 건물의 임시사용 승인을 서울시가 거부하고 있어서다. 서울시는 주변 도로가 푹 꺼지는 싱크홀 문제, 공사 낙하물 안전 대책, 교통 문제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싱크홀은 박원순 시장도 제2월드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낙하물 피해는 6중 안전장치로 차단했다. 교통 문제도 도로 확장은 이미 마무리됐고, 지하 버스환승센터 공사는 진행 중이다. 서울시가 제기한 문제는 대부분 해결된 셈이다. 게다가 초대형 건물을 나눠서 사용허가를 해준 사례는 국내외에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요지부동이다.

27년간 지겹도록 낭패를 겪은 롯데는 그렇다고 치자. 입점 준비를 마친 업체들에는 이게 어디 보통 일인가. 70%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다. 상품 생산과 매입은 이미 끝났다. 판매사원도 다 뽑았다. 생사가 걸린 문제다.

전체적으로 3만5000명, 쇼핑몰만 해도 6000명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사업이다. 연간 25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할 것이라는 추산도 나와 있다. 서울시는 이런 사업의 임시사용 승인을 무슨 명분으로 틀어쥐고 있는 것인지. 이럴 거면 뭐하러 제2롯데월드 사업을 허가해줬는가.

신 회장은 해외에서 번 돈으로 조국 근대화에 앞장선 기업인이다. 약속대로 과실송금은 한 푼도 없었다. 서비스산업에 주력해 재계 5위의 대기업을 일궈 31만명을 직간접 고용하고 있다. 이젠 그 노하우를 수출까지 하고 있다. 외길만을 파온 92세 원로 기업인이 자신의 필생 사업을 서울시 공무원들이 걱정해야 할 정도로 대충대충 진행하겠는가.

서비스산업이 살아야 고용이 늘어난다며 스스로의 규제 혁파에 거품을 무는 공무원들이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규제가 풀렸는가. 답답하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