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등 켜진 금융시장] 또 다른 거품인가…글로벌 채권시장 '앗! 뜨거워'
“채권시장의 희열이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과열 모습을 보이는 글로벌 채권시장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렇게 표현했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 상황으로 인해 신흥국과 투기등급 채권에조차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채권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는 분석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연기금과 자산가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채권 투자에 나서면서 그동안 신용등급이 낮아 글로벌 채권시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못한 신흥국과 기업들도 채권 발행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위험’에 둔감해진 투자자

[경고등 켜진 금융시장] 또 다른 거품인가…글로벌 채권시장 '앗! 뜨거워'
글로벌 금융시장의 벤치마크(기준) 격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연 2.5%에 머물고 있다. 올 1분기 말 연 2.76%에서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다. 금리가 떨어져 조달비용이 줄어들면서 자금을 확보하려는 기업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시장 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 상반기 미국 회사채 발행 규모는 7848억달러(약 804조3400억원)였다. 이 가운데 투기등급 채권도 23%가량을 차지했다.

조금이라 도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투자자의 수요가 늘면서 미국 투기등급 채권 금리는 연 5%를 밑돌고 있다. 이에 따라 미 국채와 투기등급 채권 금리 격차는 2007년 이후 최저로 좁혀졌다. 존 론스키 무디스 수석연구원은 “금리로만 보면 투기등급 채권을 더 이상 고수익 채권으로 부르기 어려울 정도”라고 평가했다.

고금리 채권 수요로 각국 기업의 영구채 발행도 늘었다. 영구채는 횟수 제한 없이 만기를 연장할 수 있는 채권이다. 금리는 일반 회사채보다 2배가량 높지만 발행 기업이 부도가 나면 변제 순위가 다른 채권에 밀려 위험이 큰 편이다. 올 2분기 글로벌 영구채 발행액은 579억달러로 전 분기 대비 72% 증가했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발행한 영구채 규모는 53억달러(약 5조4300억원)로 전분기 대비 2배 급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격 변동성이 크고 고위험 채권인 영구채 발행이 증가한다는 것은 채권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는 증거”라고 진단했다.

◆케냐·세네갈 등 국채시장 등장

남유럽 국가와 남미·아프리카 신흥국들도 글로벌 채권시장의 활황기를 만끽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10년 만기 스페인 국채 금리는 연 2.49%를 기록했다. 200년 만의 최저치다. 10년 만기 포르투갈 국채 금리도 이날 전 거래일 대비 0.03%포인트 하락한 연 3.59%로 마감했다. ‘은행 위기설’이 불거진 이후에도 빠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주 5억달러 규모로 발행된 세네갈 국채에는 발행예정액보다 8배 많은 투자자금이 몰렸다.지난달에는 케냐가 아프리카 국가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20억달러어치의 채권을 발행했다. 2008년 국가 부도 이후 처음 채권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에콰도르도 지난달 성공적으로 채권 발행을 마쳤다. 유로존 재정위기를 촉발한 그리스는 올 4월 구제금융 이후 4년 만에 채권시장에 복귀했다. 이런 추세 덕분에 신흥국의 상반기 국채 발행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54% 급증한 694억7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채권시장이 호황을 넘어 과열 양상을 보이자 전문가들 사이에선 ‘거품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이 현실화되면 신흥국과 비우량 등급 채권에서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얀 로이스 JP모간 연구원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 움직임을 보이면 채권 가격이 폭락하고 채권시장에서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는 등 큰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