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한국 연비, 자동차는 웁니다
지난달 국내에 출시된 프랑스 푸조의 신형 해치백(뒷좌석과 트렁크가 합쳐진 차) ‘뉴 308’. 이 차의 L당 연비는 유럽에서 24.4㎞로 인증받았다. 당연히 국내에서 팔리는 동급 차량 중 최고 연비를 기록할 것으로 푸조 측은 기대했다.

깐깐한 한국 연비, 자동차는 웁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인증받은 복합연비는 14.6㎞. 유럽 공인 연비에 40%나 못 미쳤다. 푸조자동차를 국내에 수입하는 한불모터스는 어리둥절했다. 대대적으로 추진하고자 한 연비 마케팅을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 결국 고육지책으로 “소비자가 경험한 실제 연비로 승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내달까지 뉴 308을 산 소비자가 향후 1년 내 1만㎞를 주행한 누적 평균 연비가 16.7㎞에 못 미치면 유류비 차액을 보상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16.7㎞는 뉴 308의 경쟁 차종인 폭스바겐 골프 2.0TDI가 한국에서 인정받은 복합연비다.

한국만 들어오면 연비에서 손해 보는 차는 뉴 308만이 아니다. 유럽 차들은 국내로 수입되는 족족 30~40%씩 연비가 깎이는 게 다반사다. 푸조그룹 산하인 시트로앵이 지난 3월 국내에 내놓은 그랜드 C4 피카소도 연비로 홍역을 치렀다. 이 차의 유럽 복합연비는 22.2㎞였지만 한국에선 14㎞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37%가량 깎인 셈이다.

베스트셀링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BMW의 320d는 유럽에서 22.5㎞를 연비로 인정받았지만 한국에선 16% 이상 낮은 18.5㎞에 만족해야 했다. 벤츠 E220 CDI도 유럽과 한국의 연비 차이가 5㎞ 이상이다. 폭스바겐의 골프 2.0 TDI도 한국에서 6㎞가량 손해를 봤다.

한국에서 ‘연비 디플레이션’을 경험하는 것은 유럽차만이 아니다. 유럽 디젤차의 독주 체제 속에서 일본 업체로 유일하게 올해 국내 판매량 10위 안에 든 인피니티 Q50의 연비도 5㎞ 이상 차이가 났다. 크라이슬러의 컴패스는 유럽에서 14.1㎞로 연비 테스트를 통과했지만 한국에선 9.3㎞에 그쳤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관계자는 “도로 상태와 신호 체계, 운전자의 습관에 따라 연비는 달리 나올 수 있다”며 “유럽은 한국보다 도로 상황과 신호 체계가 효율적이어서 연비가 30% 이상 잘 나오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한국의 연비 기준은 앞으로 더 강화될 전망이다. 우선 정부는 연비를 측정할 때 사용하는 휘발유 및 경유의 탄소 함량을 낮추기로 했다. 휘발유를 예로 들면 기존에는 탄소 함량을 640g으로 책정했지만 이제는 613g으로 낮춘다. 실험실에서 자동차를 측정기에 올려 놓고 주행한 뒤, 여기서 나온 탄소 함량을 수집해 연비를 측정하고 있는데 연료의 탄소 함량을 낮추면 배출 탄소값이 낮아져 연비가 낮아진다. 2017년 전후로 사후 연비 검증도 깐깐해진다. 우선 연비 측정 대상 차량의 주행거리 기준을 엄격히 제한한다. 기존엔 3000㎞ 이상 주행한 차량이면 연비를 측정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3000~1만6000㎞ 범위에서 주행한 차만 연비를 잴 수 있다. 많이 달려 길들여진 차일수록 일반적으로 연비가 더 나오는데 정부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또 연비가 가장 안 나오는 타이어로 연비를 측정해야 한다. 기존에는 업체가 자율적으로 타이어 종류를 정해 연비를 검증받도록 했지만 앞으론 저연비 타이어를 장착해야 한다. 가령 세 종류 이하의 타이어를 선택하면 연비가 가장 안 나오는 타이어로 잰 연비를 대표 연비로 하고 네 종류 이상의 타이어를 쓰면 두 번째로 연비가 안 나오는 타이어로 측정한 연비를 대표 연비로 인정하는 식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