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2000년 초 포스코의 화두는 자동차용 강판이었다.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아 집중적으로 기술개발을 해야 할 분야로 꼽혔다. 하지만 마케팅 결과는 부진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내수도 좋지 않았고 수출도 잘되지 않는 이중고에 빠졌다. 2001년 포스코의 자동차 강판 판매량은 100만t 아래로 떨어졌다.

포스코 기술연구실장은 당시 경영진을 찾아가 “우리가 자동차 강판을 만들어 고객에게 공급한다는 인식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객인 자동차회사가 신차를 개발하는 과정부터 참여해 얼마나 단단한 강판을 원하는지, 휘어짐이 얼마나 좋아야 하는지, 얼마나 가벼워야 하는지 등을 같이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제품 공동개발(EVI) 프로세스를 확립하자는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뒤 포스코의 자동차 강판 판매량은 급격히 늘었다. 이제는 연 800만t씩 팔리는 포스코의 주력 제품이 됐다. 13년 전 최고경영자(CEO)에게 혁신적으로 생각을 바꿔야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게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다.

美 철강업 본산지 택해 유학

‘순수한 연구자’에 가까웠던 권 회장은 지난 1월 포스코 사령탑에 올랐다. 주위의 예상을 깨고 중책을 맡은 만큼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는 엔지니어가 갖는 강점을 경영에 접목해 포스코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최고의 철강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1960년대 중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고 철이 ‘산업의 쌀’로 불리며 온 국민의 주목을 받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서울대 금속공학과에 들어간 것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가 대학에 입학하던 1968년은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현 포스코)가 설립된 해이기도 했다.

그가 박사학위를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받은 것도 US스틸 본사가 있는 피츠버그가 미국 철강산업의 본산이었기 때문이다. 군 복무와 유학비용을 마련하려고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근무하고 다시 캐나다 윈저대 석사학위 과정을 거쳐 자리잡은 피츠버그는 그의 기대와 확연히 달랐다.

철강왕 카네기의 고향이기도 한 피츠버그에 있는 US스틸은 가격과 기술경쟁력을 앞세운 신일본제철 등 일본 철강업계의 공격을 받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지금 피츠버그에는 US스틸 본사 외에 철강산업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권 회장은 이때의 경험을 주변에 자주 언급했다. “기업이 없어지면 도시가 망하고, 결국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돈 버는’ 기술 개발 중시

1986년 포스코에 입사한 그는 1987년 산업과학기술연구소(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년 멤버로 뽑혔다. 그런데 단순한 ‘공돌이’라기엔 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성취욕이 강했고 실용화할 수 없는 기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쇠락하는 피츠버그의 모습이 뇌속 깊이 각인돼 있어서다.

4년 전 RIST 원장으로 근무할 때 일이다. 산업 부산물에서 스테인리스스틸 제작에 필요한 니켈을 뽑아내는 새 방법을 찾으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연구원들은 수소 환원 침출법이라는 신기술을 활용하자는 보고서를 올렸다. 보고서를 읽은 권 회장은 “리모나이트를 시험해 봤느냐”고 한마디 했다. 니켈 함유량이 낮아 포스코의 페로니켈 제련 자회사인 SNNC에서도 활용하지 못하고 버리는 리모나이트에서 고순도 니켈을 뽑을 수 있으면 사업가치가 크게 뛰어오를 수 있는데, 그것을 검토해 봤느냐는 지적이었다. 그의 지적대로 리모나이트를 실험한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스테인리스스틸 제작비용을 크게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단순히 ‘부산물에서 니켈을 회수하면 된다’는 연구자의 자세가 아니라 ‘돈이 되도록 니켈을 회수해야 정답’이라는 권 회장의 경영자 마인드를 보여주는 일화다.

그가 회장에 취임한 뒤 줄곧 강조하고 있는 ‘솔루션 마케팅’도 같은 개념이다. 권 회장은 인천 송도의 포스코 연구원 150명을 마케팅 부서 소속으로 바꿨다. 무조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고객이 원하는 기술, 팔리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그의 오랜 신념에 따른 결정이다.

타고난 강철 체력도 열정을 뒷받침했다. 그와 함께 RIST에 근무했던 한 포스코 관계자는 “새벽 2~3시에 연구원들이 실험을 마치고 이메일을 보내놓으면 30분 만에 답장이 왔다”며 “도대체 언제 잠을 자는 건지 궁금해서 어느날 부인에게 물었는데 평균 3~4시간만 잔다기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고 기억했다. 주량도 상당해서 한 번도 술에 취해 실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위대한 포스코’

지난 1월 회장 후보로 선정된 뒤 권 회장이 가장 먼저 한 것은 ‘혁신 포스코 태스크포스(TF) 1.0’을 꾸린 일이었다. ‘1.0’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를 회장으로 선출한 포스코 이사회 관계자는 “기본기인 철강업 본래의 경쟁력을 중시하는 권 회장의 스타일이 지금 포스코에 필요하다”며 “외부 줄대기 등 포스코의 적폐를 없앨 적임자라는 게 당시 이사회 중론이었다”고 했다.

실제 그가 취임한 뒤 민간기업이라기보다 공기업에 가까웠던 포스코 분위기는 상당히 바뀌었다. 지원업무 담당 경영임원을 절반으로 확 줄이고 대신 프로젝트 단위로 업무를 나눠줘 ‘성과를 내라’고 압박하는 것이 그런 예다.

최근 포스코가 산업은행이 제안한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패키지 인수 제안을 거절한 것도 시장을 놀라게 했다. 재무구조 개선을 통한 신용등급 회복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회사 방침을 사내외에 알리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재무구조 개선은 숙제

녹록지 않은 경영 여건을 감안하면 권 회장의 경영 행로가 순탄할지 여부를 예단할 수 없다. 그는 임기 3년 동안 포스코의 재무구조를 개선해 신용등급을 A로 되돌리고 시가총액도 50조원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일부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 의지도 밝혔다. 철강 전업 초일류 기업이라는 명성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강 공급과잉으로 경쟁 구도가 격화되는 상황에서 수익성을 회복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만큼 권 회장의 어깨는 다른 어떤 회장보다 무겁기만 하다.

한 포스코 관계자는 “권 회장은 취임 후 100일간 허니문을 보내며 철강 경쟁력 강화와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 신성장 사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 등 다양한 방향을 제시했다”며 “이를 얼마나 조화롭게 풀어가느냐가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 권오준 회장 프로필

△1950년 경북 영주 출생 △서울사대부고 졸업(1968)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1972) △국방과학연구소(1975) △미국 피츠버그대 금속학 박사(1985) △포스코 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1986) △포스코기술연구소 실장(1996) △포스코 유럽사무소장(2003) △포스코 기술연구소장(2007)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7대 원장(2009) △포스코 기술부문장 부사장(2011) △포스코 기술부문장 사장(2012)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 (2014.3~)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