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모바일AP사업에 삼성전자의 '고육책'…화성 시스템반도체 공장서 D램도 같이 만든다
삼성전자가 경기 화성에 짓고 있는 초대형 반도체 공장인 17라인에서 D램과 시스템반도체를 함께 만들기로 했다. 애초 시스템반도체 전용으로 지을 계획이었지만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예상만큼 수요를 확보하지 못해서다. 삼성전자가 D램 라인을 새로 만드는 건 2006년 이후 9년 만으로, 작년부터 강세를 보여온 D램값에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연말 완공하는 17라인에 들어갈 장비 1차분을 D램용으로 협력사에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7라인 중 일부만 먼저 완공해 가동할 계획이며, 시장 상황에 맞춰 가동 시기와 생산 제품을 조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7라인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인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건물 공사비로 2조2500억원이 들어가며, 2개 동으로 구성된 건물에 장비를 가득 채우면 장비값만 11조~1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완전 가동하면 웨이퍼를 월 15만장(30㎝ 기준) 생산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17라인 투자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을 적극 공략하기 위해 추진됐다. 인텔과 퀄컴 등이 장악한 시스템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를 넘게 차지하는 분야다. 메모리에선 세계 1위지만 시스템반도체에서는 약세를 보여온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기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을 정복하겠다며 2012년 6월 17라인 공사를 시작했다. 올해 말까지 20나노 및 14나노급 시스템반도체 라인을 갖춰 내년 1분기부터 최첨단 AP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공사 시작 5개월 만에 삼성전자에 그동안 AP 파운드리(수탁생산)를 맡겼던 미국 애플이 특허소송 여파로 주문을 줄일 조짐을 보이면서 공사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듬해 3월 공사를 재개했지만 시스템반도체 부문 부진은 이어졌다. 애플은 올해부터 AP 파운드리 주문량의 절반 이상을 대만 TSMC로 돌렸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시스템LSI사업부장을 교체한 것도 사업 차질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많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상황에서 17라인 완공 시점이 연말로 다가오자 시스템반도체와 함께 D램도 생산하기로 전략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D램은 작년부터 공급 부족으로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30년 치킨게임 종결로 업체 간 경쟁이 완화된 데다 생산량을 늘리는 미세공정 기술이 10나노대에서 막힌 탓이다. 이 때문에 통상 매년 40% 선이던 비트그로스(bit growth·비트 단위로 환산한 반도체 생산량 증가율)는 작년부터 20%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D램 업계는 2010년 이후 새 생산라인을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D램값을 떨어뜨릴 정도로 생산을 늘리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원석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공급 초과를 유발하지 않는 수준에서 생산량을 적절히 관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