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보다 무섭다'는 저출산 문제의 배경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부정적 인식이 있다. 서울 이화여대 학생들이 학교를 나서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북핵보다 무섭다'는 저출산 문제의 배경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부정적 인식이 있다. 서울 이화여대 학생들이 학교를 나서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한국 여자대학생 가운데 절반 이상이 ‘반드시 결혼할 필요는 없으며 취업과 직장생활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하면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여학생도 3분의 1에 그쳤다. 직장 생활과 양육을 병행하기 힘들고, 경쟁적인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모바일 리서치 업체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남녀 대학생 1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처럼 저출산·고령사회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결혼할 생각은 있지만…

결혼에 대해 대학생들이 바라는 것과 현실의 간극은 컸다. 결혼할 의사를 묻는 질문에 여학생의 87.9%, 남자대학생의 94%가 ‘있다’고 답했지만 ‘결혼보다는 취업과 직장생활이 우선’이라는 응답이 여성의 경우 51.2%, 남성은 42.6%로 ‘결혼이 우선’이라는 답변(여성 17%, 남성 28.4%)보다 훨씬 많았다. 또 여학생 응답자 80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435명(54.4%)은 ‘반드시 결혼할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응답은 20.1%인 161명에 불과했다.

점점 혼인 연령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선 남녀 대학생 모두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남학생의 경우 ‘경제적 부담 때문’이라는 응답이 47.1%, ‘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답이 44.5%로 결혼 비용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여학생은 경제적 부담을 꼽는 응답이 42.4%로 가장 많았지만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가치관 때문’이라는 응답도 37.4%에 달해 남학생과 차이를 보였다. ‘결혼할 의사가 없다’고 답한 여학생(전체의 12.1%)을 대상으로 결혼을 꺼리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69.1%가 ‘결혼에 따른 의무와 역할부담’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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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못 키울 바에 낳지 않겠다

남녀 모두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 자신이 없다면 낳지 말아야 한다’는 설문에 과반수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여학생의 경우 매우 그렇다(41.4%)와 그렇다(35.4%)를 합쳐 76.8%를 차지했고 남학생도 57.5%(매우 그렇다 29.5%, 그렇다 28%)에 달했다.

응답자들은 또 ‘자녀가 가족의 유대를 강하게 한다’(여성 85.5%, 남성 87.6%) ‘자녀가 있어야 노후에 외롭지 않다’(여성 68.5%, 남성 76.2%)는 인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데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양육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설문에 여학생의 87.1%가, 남학생은 73.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경쟁적인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여학생의 77.6%, 남학생의 61.7%였다. 자녀에게 얽매이는 게 싫어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답변도 많았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를 묻는 질문에 여학생 응답자의 32.4%는 ‘아이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했고 남학생의 경우 이 응답 비율이 42.9%에 달했다. 김태헌 한국교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1990~2000년대만 해도 소득이 더 높아지면 아이를 더 낳겠다고 답하는 젊은이가 많았지만 요즘은 여건이 나아져도 ‘더 낳진 않겠다’고 답하는 젊은이가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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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가 원해도 낳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남녀 대학생의 인식 차이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방해받는 것을 가장 꺼렸고, 남성은 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가장 우려하고 있었다. 여성은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응답이 20.1%에 불과했지만 남성은 47.5%로 절반에 육박했다. ‘결혼을 하면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하는가’는 설문에도 남성은 ‘그렇다’(55.8%)는 답변이 ‘그렇지 않다’(22.4%)의 두 배를 넘었지만, 여성은 ‘그렇다’(34.6%)는 답변이 ‘그렇지 않다’(42.6%)는 의견보다 훨씬 적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남편이 바란다면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여학생의 절반이 넘는 51%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게 삶에 지장을 준다는 항목에 대해서도 여학생의 49%는 ‘그렇다’고 했지만, 남학생은 이 비율이 22.9%에 그쳤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결혼과 양육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이나 부담이 줄지 않으면서 생기는 현상”이라며 “이 같은 인식의 격차를 줄이지 않으면 저출산 대책의 방향을 잘못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원기/마지혜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