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내수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까지 겹쳐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한산한 모습을 보이는 서울시내 한 백화점 모습. 한경DB
가뜩이나 내수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까지 겹쳐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한산한 모습을 보이는 서울시내 한 백화점 모습. 한경DB
서울에서 3년째 분식점을 해온 자영업자 김영한 씨(47)는 지난해 초 시중은행으로부터 5000만원을 빌렸다. 연 5% 안팎의 금리에 1년 후 만기가 되면 한꺼번에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내수경기 침체 여파로 식당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올초 대출금을 갚지 못해 연체하게 됐다. 매달 21만원이던 이자는 연체 이자율(연 14%)을 적용받으면서 58만원으로 불어났다. 감당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고민을 거듭하던 김씨는 결국 사전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을 받았다. 만기를 5년으로 늘리는 대신 매달 원리금을 상환하는 조건이다. 정상 대출로 분류돼 다시 이자도 싸졌다. 원금과 이자를 합쳐 매달 약 100만원씩 꾸준히 갚으면 빚을 모두 털어낼 수 있게 됐다.

○차입금 느는데 상환능력 악화

김씨와 같이 자영업자(개인사업자)들이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상환을 미룬 금액은 지난 한 해 동안 9493억원(3월 말 기준)에 달한다. 상환 만기를 연장한 것이 7375억원이었으며 △이자 감면(2042억원) △이자 유예(1064억원) △분할 상환(275억원) 순이었다.

사전채무조정 액수를 분기별로 보면 지난해 2분기 2142억원(1149건), 3분기 2178억원(1315건)으로 작년 4월 이 제도가 본격 도입된 이후 계속 증가하다가 4분기 들어 1871억원(1341건)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올 1분기엔 2130억원(1561건)으로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적은 액수의 빚을 사전채무조정받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그만큼 자영업자들의 자금난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꼭꼭 닫은 지갑 '내수 빙하기'] 내수침체로 자영업자 폐업 속출…193조 대출금 '시한폭탄' 되나
금융당국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퇴직이 본격화됨에 따라 자영업자 간 경쟁이 심화하는 반면 경기회복은 지연되면서 자금난을 겪는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현상을 반영,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 은행권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193조6000억원으로 작년 이맘때(176조6000억원)보다 9.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대출 증가율(6.4%) 및 가계대출 증가율(4.3%)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훨씬 가파르다. 자영업자 대출은 은행 총 대출(1179조2000억원)의 17%를 차지한다. ‘내수경기 침체 장기화→자영업자 대출 상환능력 악화→대출 등 외부 차입 증가’라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폐업 시 극빈층 전락 우려

자영업자들의 팍팍한 살림살이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세월호 참사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음식·숙박업체 등을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고통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음식·숙박업이나 소매업에 뛰어들었다가 과열 경쟁에 밀려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줄고 있는 추세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63년 37.2%였던 자영업자 비중은 점차 하향곡선을 그리며 1988년(28.8%) 처음으로 20%대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연평균 자영업자 수는 565만1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2506만6000명 중 22.5%를 차지했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자영업자들은 실업급여나 퇴직금 등 최소한의 안전판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폐업 시 극빈층으로 내몰릴 우려가 높다”며 “금융 지원도 중요하지만 실질 소득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사전채무조정

프리워크아웃. 보통 3개월 미만의 연체자를 대상으로 원금과 이자를 장기간에 걸쳐 나눠 갚을 수 있도록 대출계약을 바꿔주는 제도다. 차입자들은 3개월 이상 연체로 인한 압류를 피하는 동시에 높은 금리의 연체이자를 물지 않아도 된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