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e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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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국이 시국인 만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임동진 열린문교회 목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세월호 참사에)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너무 아파요. 안타깝습니다. 안타까워요.”

임 목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감은 눈을 번쩍 뜨고는 이렇게 입을 뗐다.

“기독교 가르침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입니다. 짧은 제 견해지만 기독교의 핵심은 ‘희생’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구원’을 이끄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구원파)서 기독교, 구원… 이게 말이 됩니까. 모든 기독교가 도매금으로 사기, 불법 집단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침례교회에서도 지금 너무나 당혹스러워해요. 대체 거기에 침례라는 말이 왜 붙었는지. 온갖 편법·불법 행위 증거가 지금 다 나타나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면 종교 지도자로서 떳떳이 나타나서 흑백을 가려야지 왜 잠적합니까.”

한참을 생각하던 임 목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분합니다. ‘하나님, 이 사태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고 매일 묻습니다. 너무 분해서 치가 떨려요. 제가 성격이 급합니다. 다혈질이고요. 정말 대한민국을 향해 외치고 싶습니다. (유병언 씨가 지금 하는 행동은) 종교를 빙자한 불법이지 기독교의 원래 모습이 아니라고요.”

주치의가 장례를 준비하라고 할 만큼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가 기적같이 살아나 온전히 종교인으로 거듭난 원조 ‘국민오빠’ 임 목사를 용인시 기흥구 열린문교회에서 만났다.

배우로서의 감성은 목포 인근 섬에서

[人사이드 人터뷰] 임동진 "뇌경색 3일 뒤 기적같은 의식 회복…덤 인생 살며 '희생' 참뜻 깨달아"
함경도에서 태어난 임 목사는 8·15광복 때 어머니 등에 업혀 인천으로 넘어왔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목포 앞 고하도로 옮겨갔다. “4년 동안 배를 타고 목포로 통학했어요. 파도, 물새, 섬의 사시사철 변화를 보면서요. 그때 감성이 참… 라디오를 항상 끼고 살았어요.”

서울로 올라와 당시 ‘예고’로 통하던 서라벌고를 졸업한 뒤 서울연극학교(서울예대 전신)에 들어갔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정도전’에서 최영 장군 역을 맡은 배우 서인석 씨가 고교 후배다. 원래 최영 장군 역할은 작년 임 목사에게 먼저 섭외가 들어왔지만 건강상 문제로 사양했다. 자율신경실조증이 갑자기 닥쳐 제대로 식사도 못 하고 물건도 잡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의상도 다 맞춰놨었는데… 아무튼 저랑 체격이 비슷한 인석이가 맡게 됐다”며 웃었다.

내 삶은 덤, 허락할 때까지 나누고 싶어

임 목사는 2001년 8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했다. 배우, 라디오 진행, 교회 장로 역할을 쉴 새 없이 하며 건강을 돌보지 않은 탓이다. 소뇌가 계속 팽창해 숨뇌(연수)를 눌러 목숨을 잃을 위험한 상황이었다. 입원했던 병원에서는 의식을 찾을 가망이 없고 회복하더라도 평생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무서운 말을 했다. 그러나 임 목사는 3일 뒤에 의식을 회복했다. “기적이죠. 참 오묘해요. 그래서 다 내려놓고 ‘앞으로 내 삶은 덤’이라는 생각에 목사가 된 겁니다.”

임 목사의 장남은 ‘선배 목사’다. 캐나다 밴쿠버 인근 칠리웍에서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장녀 유진 씨는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서다가 강사로 활동 중이며, 막내딸 예원 씨 역시 배우다. 예원 씨는 재미동포 2세인 미군 대위와 결혼해 미국에 체류 중이다. 미 노스캐롤라이나 한인교회 집회에서 사위를 만난 임 목사가 다리를 놓고 주례까지 봤다.

먼저 인간이 돼라

임 목사는 목회 활동을 ‘진액을 빼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신학에 대한 기초가 부족해서 그런지 참 말씀을 준비하기 힘들어요. 남들 한 시간 준비할 때 전 서너 시간을 해야 합니다. 말씀뿐인가요. 성도들 아플 때 병원 가죠, 결혼하면 주례 보죠, 노인분들 돌봐야죠… 그래도 배우 활동한 게 목회에 도움이 됩니다. 교회는 참 다양한 분들이 모이는 시장 같습니다.”

그는 브라운관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 연극에 전념했다. 유치진, 이해랑, 이광래 씨 등 현대극의 1세대 배우들 밑에서 배운 가르침은 ‘먼저 인간이 돼라’였다. 그런데 요새는 인간이 덜된 배우, 무늬만 배우들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배우(俳優)란 ‘사람(人)이 누릴 것을 다 못해도(非) 넉넉한(優) 마음 잃지 말고 인생을 표현하라’는 뜻이라고 옛 선생님들로부터 배웠습니다. 요새는 혼도, 질서도 좀 없는 것 같아요. 연예기획사들도 너무 상업적이고 대형화돼 걱정입니다.”

절대 빚 안 진다…교회는 돈 멀리해야

임 목사는 열린문교회의 헌금 내역과 사용처를 매주 공개한다. 이런 투명함에 성도들의 신뢰가 더 커져간다고 했다. 교회를 개척한 뒤에도 배우 시절 타고 다니던 낡은 밴을 계속 탔다. 보다 못한 한 성도가 ‘목적헌금’으로 카니발을 사 줬다. 물론 이 차량은 그가 퇴직 후 반납한다. “교회는 돈이 많으면 절대 안 됩니다. 조직이 커져도 문제가 생겨요. 어쩌다 돈이 남으면 벽돌 하나 사서 차곡차곡 올려 건물을 짓고, 빵 몇 개 사서 나눈다는 마음으로 교회를 운영해야죠. 성도들 집문서 잡고 은행에서 돈 빌리고 헌금을 이자로 내고, 그런 일을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작지만 빚이 한 푼도 없습니다. 성도, 사람이 교회의 전부여야 합니다. 이런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정말 어깨에 띠 두르고 ‘작은 규범을 지킵시다’라고 운동이라도 하고 싶은데 아내가 ‘나이 먹고 주책없다’며 말려요. 더구나 목사라는 사람이니까 꼼짝 말아야죠. 이렇게 참느라고 몸이 더 축나는지.(하하)”

부족한 나를 이렇게 쓰심에 하늘에 감사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섭리’다. “성경 전체가 섭리인데 신학이 사실 엄청나게 방대하고 어려워요. 루터교는 가톨릭하고 의식이 좀 비슷합니다. 제가 좀 정리를 했는데 성도들이 잘 수용해줬어요. 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게 바로 섭리예요. 말씀을 전하다 버럭 화도 내고요. 성도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아 40대는 청년 축에 드는데, 성도들이 저만 보면 그렇게 즐겁고 우스워 죽겠대요. 참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를 하늘이 이렇게 쓰시는구나 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임 목사는 사단법인 한국기독문화예술인총연합회, 극단 예맥 대표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매월 서울 대학로에서 ‘아름다운만남’이란 타이틀을 걸고 각계 인사와 토크쇼를 벌인다. 목사 퇴직 후에는 기독교 예능인들과 함께할 일을 찾을 계획이다.

윤복희·장미희·정윤희와 호흡…원조 '국민오빠'

[人사이드 人터뷰] 임동진 "뇌경색 3일 뒤 기적같은 의식 회복…덤 인생 살며 '희생' 참뜻 깨달아"
임동진 목사(왼쪽)는 국내 최초 상업뮤지컬인 극단현대의 ‘빠담빠담빠담’ 1977년 초연에서 배우 윤복희 씨 남편 역을 맡았다.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초연에서도 윤씨와 호흡을 맞췄다. “지금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에 웃음이 난다”고 말했다. 한국영화가 맥을 못 추던 시절, 그나마 잘나가던 에로영화에도 출연했다.

이후 ‘하늘로 가는 밝은 길’ ‘밤을 기다리는 해바라기’ ‘F학점의 천재들’ 등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지평을 넓혔다.

TBC가 KBS로 통합되기 전 ‘상노’ 홍국영 역할로 첫 연기상을 탔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100분 단편드라마인 ‘생존자’ 주연도 맡았다.

KBS에 둥지를 틀고 나서는 ‘달무리’에 배우 장미희 씨(오른쪽)와 출연하며 ‘전국구 배우’로 거듭났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동명의 영화에는 배우 정윤희 씨와 출연했다. 드라마·영화 모두 딸 역할은 배우 강수연 씨가 맡았다. 임 목사는 “갑자기 어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카카오톡으로 달무리 때 사진을 보내왔는데 ‘그때 내 얼굴 돌려달라’고 외치고 싶었다”며 흑백 사진을 보여줬다. KBS TV문학관 1화 ‘을화(김동리 저)’에서도 장미희 씨와 출연했다.

1987년 특집극 ‘환멸을 찾아서’로 KBS 초대 연기대상을 탔다. 임 목사는 “요샛말로 ‘오빠’ 소리 많이 들었다”고 웃었다. 노주현, 조용필 등 당대 유명인들과 인기 순위에서 항상 1, 2위를 다퉜다.

“라이벌이 누구였느냐”라는 질문엔 “라이벌이란 말 자체가 말이 안 돼요. 배우라는 직업은 상대가 있기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고 답했다. 신학 공부와 함께 출연하던 방송 드라마에서 마지막 모습은 2006년 ‘대조영’에서 고구려의 명장 양만춘 역할이었다.

■ 임동진 목사는

-1944년 4월 함경남도 출생
-1964년 첫 연극 ‘생명’ 데뷔
-1968년 TBC 공채 8기
-1987년 KBS 초대 연기대상 수상
-2006년 루터신학대학원 졸업
- 2007년 루터교 목사 안수, 열린문교회 개척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