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노선 독점권' 없앤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연안 해운사업 전반에 대해 강력한 구조 개혁을 시행한다. 연안 노선의 독과점을 경쟁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진입장벽을 허물고 연료비 연동제와 주중-주말 요금 차별화 등의 탄력적 요금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또 선박 현대화를 위해 노후 여객선 교체 등에 필요한 자금을 정부가 지원하는 노르웨이의 ‘녹스펀드’를 벤치마킹한 ‘한국식 준공영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30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정부는 여객선 도입부터 선박 운영, 출항 전 검사, 항로별로 부여되는 면허제도, 선장과 선사 처벌 규정 강화, 사고 직후의 초기 대응 체계 확립 등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여객선 안전운항 관리 종합대책’을 5월 발표할 예정이다.

해수부 고위 관계자는 “영세 선사가 많은 연안 여객업계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행하면서 선박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모든 대안을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부는 우선 신규 선사가 기존 항로에 취항하는 것을 막는 진입규제를 완화해 업체 간 경쟁을 유도하기로 했다. 현재 국내 99개 항로 중 85개가 독점 노선으로 운영되고 있다.

상당 부분 수익성이 저조해 형성된 ‘자연독점’이지만 선박 현대화와 서비스 경쟁력 제고, 요금 합리화 등이 이뤄질 경우 자본력을 갖춘 중견·대기업의 진입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낡은 선박 교체땐 정부가 재정·금융 지원

해수부는 이를 위해 ‘항로를 먼저 차지한 기존 선박과 진입을 원하는 신규 선박의 하루 최대 예상 운송 수입’ 대비 ‘기존 선박의 하루 평균 운송수입(최근 3년간 평균)’ 비율이 25%를 넘어야 새로운 선사의 진입을 허용한다는 현행 해운법 4조를 개정하기로 했다. 25% 기준을 얼마나 낮출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 규제는 당초 기존 업체가 한 항로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국내 최대 연안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지난 20년 동안 인천~제주 간 항로를 독점하면서 노후 선박을 무리하게 운영하는 등 제도를 악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원은 “최대 운송수입 산정 기준도 지나치게 까다로워 면허제도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실 제 인천~제주 항로는 최근 이용객이 급증하면서 이 비율이 26.8%까지 높아졌지만 오랫동안 25% 이하에 머물렀다. 일본 관광객이 급증한 부산~제주 간 노선의 최대 운송수입 대비 평균 운송수입 비율도 16.1%에 불과하다. 거주민의 이용도가 높은 인천~백령도(23.5%)나 목포~제주(18.6%), 포항~울릉도(13.7%) 등 국내 여객선 항로 대부분이 25% 이하다.

정 부는 또 선령(船齡)이 오래된 배를 새 선박으로 교체할 경우 정부가 금융·재정 지원을 하는 ‘한국식 준공영제’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여객선사가 내는 세금을 국가에 귀속하지 않고 기금으로 적립해 선박 건조 등에 사용하는 노르웨이식 ‘녹스펀드’ 제도의 도입이 유력하다. 이와 별도로 선사와 정부가 선박 건조비를 일정 비율로 분담해 배를 건조하거나 구입하는 일본식 ‘선박공유제’도 도입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선사가 여객선 요금을 조정할 수 있는 탄력운임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여객선 요금은 명목상 신고제지만 사실상 정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는 인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요금통제가 선사의 안전시설 투자여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고 유가 인상 등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할 경우 요금 인상을 허용해줄 방침이다. 유류비 비중이 40~50%인 여객 선사의 사업 구조를 감안해 항공업계가 시행하고 있는 유류할증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주말과 평일, 성수기와 비성수기 등 시기에 따라 여객 운임 차등화가 가능하도록 요금 규제를 완화해 주기로 했다.

해상여객운송 사업의 여객선 선령은 15~20년으로 낮춰질 전망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선령 규제를 강화하면 경쟁력이 없는 영세 선사들이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 준공영제

여객선 현대화를 위해 정부가 선사에 재정·금융 지원을 해주는 제도. 선사의 적자를 정부가 직접 보전해주는 완전 공영제와 구별된다.

세종=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