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에 온 나라가 집단 무기력을 넘어 아예 멈춰선 듯한 느낌마저 든다. 실종자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질 때마다 슬픔은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그러면서도 승객을 팽개친 세월호 선원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선사 및 실소유주와 관련한 추문이 속속 드러날 때마다 공분은 확산된다. 하지만 모두가 슬퍼하고 분노하는 동안, 우리 주변에는 뜻하지 않게 고통받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각급 학교는 물론 기업, 정부, 지자체, 단체 등의 행사와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후유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세공장들은 쏟아지는 반품·환불 요구에 하루하루가 걱정이 태산이다. 일감이 뚝 끊긴 동대문 봉제타운에선 임시직 노동자, 퀵서비스 기사 등 어려운 이웃들도 일거리를 잃고 있다. 직장인들의 회식 자제로 도심 번화가마저 밤 9시면 인적이 드물 지경이다. 저녁 손님이 80%나 줄었다는 음식점도 있다. 1학기 수학여행 금지로 여행업계와 관광지 업소들이 겪는 어려움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너무 장사가 안돼 가슴에 피멍이 들어도 피해자와 유족들을 떠올리면 어디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이들이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무엇을 해도 흥이 나지 않을 것이다. 국내외에서 대형 재난사고 이후 경제가 일시적 침체를 겪었던 사례도 많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이 3년 만에 가장 높았다는 한국은행 발표이지만, 지금 같아선 모처럼 살린 경기회복 불씨마저 꺼뜨릴지도 모를 정도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학교도, 공장도, 가게도 돌아가야 한다. 경제가 다시 침체의 늪에 빠져든다면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욱 고통받게 될 뿐이다.

지금 절실한 것은 실종자 구조작업이 치밀하게 진행되는 것과 더불어, 국민이 차분하게 제 자리를 찾고 본업에 충실히 하는 것이다. 공부가 손에 안 잡힌다는 학생들은 그럴수록 더 열심히 공부해 이 나라를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공장이 다시 바빠지고, 가게에 손님이 들도록 모두가 배려해야 할 때다. 힘겨운 시간이지만 대한민국 경제마저 침몰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