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잇따르고 있다. KT가 5년 만에 15년차 이상 2만3000명을 대상으로 명퇴를 받는다. 인력과 인건비가 경쟁사의 4~5배이고 작년 4분기 적자까지 냈으니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한다. 유동성이 어려운 현대 동부 STX그룹 등은 계열사를 팔고 인력도 줄이는 등 자구노력에 안간힘이다. 해운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불황업종들도 상시 구조조정 중이다. 간판기업 포스코조차 계열사 줄이기에 여념이 없다.

금융권 구조조정은 훨씬 구체적이다. 씨티은행은 전체 지점의 30%(56개)를 통폐합하고 인력도 650명 줄일 예정이다. SC은행도 지점 25%(약 100개) 감축을 진행 중이다. 영업이익이 반토막 난 국민 신한 하나 등 대형 은행들도 점포 축소, 임원 감원이 한창이다. 삼성생명은 20%의 인력을 계열사 전출, 창업 지원을 통해 줄이고 있고, 한화생명은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노조가 오는 12일 대규모 반대집회를 예고한 상황이다. 삼성증권이 이미 2년간 임직원수를 10% 넘게 줄이고도 추가 감축을 검토 중이다. 매각 대상인 우리투자증권은 1000명 감원설이 돈다. 대형 금융사들이 이 정도다. 중소형사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내 산업·금융계는 경기 부진과 저금리 장기화, 증시 침체 여파로 봄이 왔어도 봄이 아니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수익성은 추락해 기존 고비용 구조로는 버티기 힘들다. 몇몇 업종은 생사의 문제다. 대기업, 금융회사의 소위 좋은 일자리에서 부는 칼바람이다. 올 들어 3개월 연속 60만~80만개 이상 일자리가 늘었지만 체감이 안 되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은 급변하는 대내외 경영환경에 대응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필수과정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한국 경제가 빠르게 복원하고 한국 기업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외환위기 이후 전 산업의 예외 없는 구조조정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규모 구조조정은 차원이 다르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위기의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지난 3~4년간 저금리로 긴장은 느슨해졌고, 경제민주화 광풍으로 혁신은 실종됐다. 기업에는 본능적인 위험 감지장치가 있다. 먼저 줄여야 산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