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국제금융학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긴 고(
[다산칼럼] 경제의 비효율, 정치권에 책임있다
故) 루디거 돈부시 교수는 환율이 가진 독특한 성격에 주목한 바 있다. 경제 내에서 물가는 천천히 움직이는 반면 환율은 워낙 빨리 움직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물가와 환율이 동시에 변해야 하는 상황에서 물가가 느리게 움직이다 보니 환율은 거꾸로 너무 빨리 움직이면서 적정 수준을 뛰어넘어 올라가는 ‘오버슈팅’ 현상이나 적정 수준보다 더 많이 내려가버리는 ‘언더슈팅’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다 보니 두 변수 모두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한동안 갈팡질팡하는 상황이 나타난다. 새로운 균형을 찾는 과정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는 또한 경제 내에서 대내 균형, 대외 균형, 사회적 평화라는 세 가지 목표 사이에 주목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임금이 낮으면 실업이 해결되고, 수출이 잘되면서 대내 균형과 대외 균형은 그런대로 달성이 되지만 저임금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서 사회적 평화가 깨질 수 있다. 반대로 고임금 하에서 국내 통화가 고평가되는 경우 사회적 평화는 가능하지만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면서 대외 불균형으로 인한 경제위기 가능성 때문에 불안이 가중된다.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 보니 일부 목표가 달성돼도 달성 안 된 목표가 부각되고 이 문제점을 해결하려다 보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정책 기조는 자꾸 변하게 되고 경제는 불안정 상황에서 오버슈팅과 언더슈팅을 반복하게 된다. 돈부시 교수는 남미 경제 문제를 분석하면서 대외 불균형을 해소하려다가 대내 불균형이 생기고 이를 다시 해결하다 보니 사회적 평화가 깨지는 상황이 반복되는 모습을 관찰했고 이 모습이 삼각형의 세 꼭짓점 사이를 뱅글뱅글 돌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남미 삼각형(라틴 트라이앵글)’ 현상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새로운 균형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 확인되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우리 경제를 포함한 세계 경제에 수많은 변화가 관찰되고 있다. 위기 이후의 세계 경제는 위기 전과는 다른 새로운 균형점을 향해 이동 중이다. 소위 ‘뉴노멀’의 달성이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위기로 인한 타격에 국가별 차이가 존재하는 등의 이유로 뉴노멀로 가는 속도가 달라진다. 누가 먼저 새로운 균형에 안착하느냐가 국가경쟁력에 중요한 변수다. 그리고 경제주체들 간 협조와 조화가 잘 이뤄질수록 새로운 균형을 찾기 위한 오버슈팅과 언더슈팅이 줄면서 불필요한 비용을 절약하고 먼저 앞서 나가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 경제는 대외부문이 튼튼하게 버텨주면서 위기로 인한 상처가 그리 크지는 않은 편이다. 위기극복 과정에서 양적완화 축소라는 또 하나의 직격탄도 일단 잘 피해 나가는 중이다. 35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 707억달러라는 사상 최고의 경상수지 흑자, 30% 아래로 내려간 단기외채비율 덕분에 해외자본 유입이 진행되면서 경제회복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여건이 어느 정도 조성됐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큰 문제다. 대선 이후 제기된 이슈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은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며 경제 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기보다는 투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갈등 수위를 더욱 높였다. 정치권의 비협조로 인해 경제관련 법안 통과에 제동이 걸리며 우리 경제에 상당한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

뉴노멀의 조기정착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시행, 효과 점검, 정책기조 변경 여부에 대한 평가 등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규제완화라는 아젠다를 제시한 박근혜 정부의 움직임은 돋보인다. 과도한 규제를 통해 쌓인 관료제도의 내부적 비효율 척결을 통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며 뉴노멀 정착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과제의 달성을 위해,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국 삼각형’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치권을 포함한 전 국가적 협력과 협조 분위기가 절실한 때다.

윤창현 < 한국금융연구원장 c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