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용량' 차세대 IPv6 보급 급물살 탈까
사물인터넷(IoT) 시대의 기반이 되는 차세대 인터넷프로토콜(IP) 주소(IPv6)가 10년간의 제자리걸음을 멈추고 활성화될 수 있을까. 올 하반기부터 미래창조과학부 주도로 IPv6 기반 LTE와 초고속인터넷, 웹사이트 등 상용서비스가 시작될 전망이다. 미래부는 올해를 ‘IPv6 원년’으로 정하고 미국 일본 독일 등 다른 나라에 뒤떨어진 IPv6 인프라 확충에 본격 나섰다.

○정부 주도 IPv6 활성화

IP 주소는 정보기술(IT) 기기를 네트워크에 연결하기 위해 필요한 고유의 식별 주소다. 0~255의 숫자 네 묶음으로 이뤄진 IP 주소 체계인 IPv4가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IPv4 체계로 표시할 수 있는 주소가 최대 43억개에 불과한 것이 한계로 지적됐다. 세계 70억 인구가 하나씩만 IT 기기를 갖고 있다고 가정해도 고유 IP 주소를 할당하지 못하는 양이다. 아·태지역 인터넷주소관리기구(APNIC)는 2011년 IPv4 주소 최종 할당을 시행했다. 사실상 아·태지역에서 IPv4 주소가 동났다는 뜻이다.

컴퓨터 외에도 냉장고 청소기 전등 등 갖가지 사물에 인터넷이 연결되는 IoT 시대가 코앞에 다가오면서 IP 주소 부족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졌다.

IPv6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인터넷표준화기구(IETF)에서 만든 차세대 IP 주소다. 기존 IPv4 주소 개수의 네제곱에 달하는 주소를 할당할 수 있어 사실상 무제한 할당이 가능하다. 데이터 처리 속도도 기존 IPv4 체계보다 빠르다. 데이터 처리 용량이 커졌고 보안성도 높아졌다.

미래부는 실질적인 IPv6 서비스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통신, 초고속인터넷, 콘텐츠 부문 369개 사업자의 IPv6 전환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추진체계를 마련했다. 로드맵에 따르면 7월까지 SK텔레콤이 IPv6 기반 LTE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SK브로드밴드는 초고속인터넷, 다음은 웹사이트 상용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를 바탕으로 7월 이후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국내 제조사는 IPv6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을 내놓을 계획이다. 연내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업자의 대규모 전송회선인 백본망 설비 구축을 끝내고, 2017년에는 가입자망 설비 구축도 완료할 예정이다.

○10년간 지지부진

국내에서 IPv6 도입 논의가 시작된 것은 10년 전이다. 정부 주도로 2004년 IPv6 보급 촉진 기본계획을 처음 시행할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선구적 위치였지만 주소 고갈 시점을 잘못 예측한 정부가 정책을 잇달아 바꾸는 사이 인프라 구축은 늦어졌다.

그 사이 해외에서는 IPv6 도입에 속도를 내며 치고 나섰다.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IPv6 도입을 선언하고 2012년까지 정부 사이트에 적용했다. 일본에서도 총무성이 IPv6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꾸준히 지원했으며 IPv6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이 주소 체계의 보안 취약점을 집중 연구했다.

미래부는 IPv6 도입 활성화를 위해 기획재정부와 함께 조세특례제한법 시행규칙을 개정, 지난 14일부터 신규 투자가 이뤄진 IPv6 장비에 대해 소득세 또는 법인세 감면을 적용하도록 했다. 공공 부문 네트워크·웹사이트에서 IPv6 도입을 의무화해 민간 부문으로 확산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교육과 컨설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홍진표 한국외대 정보통신학과 교수는 “IP 주소가 부족하면 사설 IP망을 꼼수로 쓰게 돼 보안이 취약해질 뿐더러 양방향 통신이 안 되는 ‘절름발이 인터넷’을 쓸 수밖에 없다”며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도입에 박차를 가해야 미래에도 인터넷 강국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IPv6

현재 널리 쓰이는 인터넷프로토콜(IP) 주소 체계인 IPv4를 잇는 차세대 IP 주소 체계. IPv4는 0~255의 숫자 네 묶음으로 이뤄져 최대 약 43억개(2의 32제곱)의 주소밖에 표시하지 못한다. 반면 IPv6는 2의 128제곱으로 IPv4 전체 할당 주소 수의 4제곱에 달해 사실상 무제한 할당할 수 있다. IPv4보다 빠른 네트워크 속도와 늘어난 데이터 처리 용량, 강화된 보안 기능이 특징이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