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中企 사업포기로 내모는 법안들
박근혜 정부의 중소기업 살리기 노력은 남다르다. 중기 사장들의 사기가 부쩍 올라 있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법원 판결은 중기 사장들을 곤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작년 말에는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과거는 묻지 말라는 판결이 나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미 노사 간 합의해서 지급한 임금에 대해서는 이를 다시 계산해 추가로 보상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 판결 때문에 이제부터는 임금상승이 불가피하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악재가 터졌다. 고등법원에서 주당 68시간까지 할 수 있던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갑자기 근로시간을 1주일에 16시간이나 줄이라니, 중기 사장들이 신이 아닌 이상 근로공백을 메울 방법이 없다. 법원에서 방망이를 두드릴 때마다 중기 사장들도 방망이로 두들겨 맞는 기분일 것이다.

사법부야 법리적인 해석을 통해 판결하므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문제는 정부와 국회가 통과시키려는 법안의 내용이다. 정부도 대법원 판결이 나면 중기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므로 판결 이전에 법을 제정하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근로시간 단축법이 통과되면 우리 경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투자 활성화와 고용창출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이다. 투자 유치가 아니라 투자 포기를 조장하는 법이 통과돼서는 안 되겠다.

혹자는 근로시간 단축은 고용창출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얘기는 적어도 한국 제조업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사람을 더 구해 써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람을 못 구해 외국인 근로자가 생산라인의 상당 부분을 메우고 있다. 이나마도 외국인 근로자를 5년마다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기술 난이도가 높은 업무는 맡길 수도 없다.

이런 사정이니 중기 사장들이 근로시간 단축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당분간 적어도 주당 60시간 정도는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물론 노사가 합의하면 말이다. 그러나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돼 있는 법안의 유예기간은 너무 짧다. 유예기간을 달라는 것은 생존의 몸부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만약 중기가 스스로 살기 위한 생존전략을 자동화를 통한 고용유지에서 찾는다면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사장들의 결정이 해외이전이라고 한다면 국가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 매우 걱정스럽다. 국내에서 방망이로 계속 두들겨 맞은 중기 사장들은 이제 대우받는 해외로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을 것이다.

아마도 중기 사장들은 쇼트트랙의 안현수 선수와 같은 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내에서 잘하고 있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해도 끼어 주지 않고 후미진 데로 데려가 흠씬 두들겨 패는 격이니 누가 이 나라에서 잘하고 싶겠나. 한국에 금메달을 안겨주던 중기가 이제는 외국으로 빠져나가 그 나라에 금메달을 선사하게 될 것 같다. 파벌싸움에 희생된 안현수가 귀화한 러시아에 금메달 3개를 안겨줬듯이 말이다. 안현수를 러시아에 잃은 것은 감정적 측면에서 큰 손실이지만, 중기를 외국에 잃는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헤아릴 수 없이 큰 손실이다. 우리 젊은이의 일자리를 외국에 갖다 바치는 꼴이기 때문이다.

쇼트트랙에는 선수가 많으니 제2의 안현수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메달감 중기는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다. 한 번 잃으면 회복할 방법이 없다. 국내에 중기를 최대한 유지하려면 근로시간단축법 시행 유예기간을 최대한 늘려줘야 한다.

중기가 국내에서 생존하고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 기회를 박탈하면 안된다. 외국에 또 금메달을 헌납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의 금메달’ 말이다. 우리 젊은이를 위한 귀중한 ‘고용 금메달’이기도 하다. 우리 중기를 빅토르 안처럼 내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지수 < 국민대총장·경영학 jisoo@kookmi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