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후 세계 장난감 업체는 최악의 환경을 맞았다. 경제위기에 사람들은 장난감 소비를 줄였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며 아이들은 장난감보다 모바일 게임을 즐겼다. 덴마크 블록완구 업체 레고는 이중의 도전에 직면했다. 2009년 등장한 모바일 블록 쌓기 게임인 마인크래프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스토리로 쌓은 레고의 '저력'…장난감 불황 뚫었다
하지만 레고의 실적은 상황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2009~2013년 사이 매출은 2배, 영업이익은 4배 가까이 늘었다. 업계에서 독보적인 실적이다. 제품에 스토리를 입히며 새로운 고객층을 만든 ‘이야기 마케팅’과 전통 제조업 가치에 집중한 경영전략이 비결로 꼽힌다.

레고의 매출 중 60% 이상은 1세 이하 영아용 제품에 집중돼 있었다. 어린이와 성인 고객을 늘리는 게 관건이었다. 레고는 제품에 이야기를 입혔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한 영화 ‘레고 무비’다. 스토리를 접하고 레고를 조립하면서 고객들은 스스로가 이야기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미국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끈 ‘키마의 전설’이나 지난해 어린이날 국내에서 품귀현상을 빚었던 ‘닌자고’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레고가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스토리는 영화 못지않다. 관련 게임도 즐길 수 있다. 매즈 니퍼 레고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디지털과 오프라인의 경험을 연결시킨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제조업의 전통적 가치에 집중한 것도 성공 요인이다. 2009년 마인크래프트가 등장하자 레고도 모바일 게임인 ‘레고유니버스’를 내놨다. 하지만 곧 접었다. 니퍼 CMO는 “베타 버전을 내놓고 끊임없이 수정하는 모바일 게임의 형태는 우리의 DNA와 맞지 않았다”며 “우리는 소비자에게 완벽한 제품을 판매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레고는 모바일 붐에 휩쓸리는 대신 생산 공장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생산 단가를 낮추겠다는 복안이었다. 레고는 지난해에만 4억8900만달러를 투자해 멕시코, 체코 공장을 확장하고 헝가리와 중국에 새 공장을 지었다. 그 결과 현재 초당 2000개, 연 550억개의 블록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레고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플라스틱 가격보다도 싸게 블록을 만든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신기술을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요르겐 비 크누스토르프 레고 최고경영자(CEO)는 “고객들이 3차원(3D) 프린터로 레고를 자체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완구업체는 3D 프린터를 자신의 제품을 불법 복제할 수 있는 ‘위기’로 인식했지만, 레고는 맞춤형 레고를 갖고 싶어하는 성인 시장을 공략할 기회로 본 것이다.

지난해 장난감 시장 규모는 북미는 감소, 유럽은 정체, 아시아만 소폭 증가 추세를 보였다. 레고는 전 지역에서 매출이 증가했다. 레고는 연례보고서에서 “가치 있는 제품은 어디서든 잘 팔린다”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