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 100원이라고? 그럼 여기에 있는 책
생활 무능력 지성인의 '변태 리포트'
은 한 1000만원쯤 되려나?”

“이젠 간단한 계산도 못 하니? 1t 정도 돼도 1000만원이 아니라 10만원이야, 10만원!!”

‘책 사랑’이란 도서대여점을 운영하는 시인 민효석은 그가 공들여 모은 책들의 가치가 ‘1㎏에 100원’이라는 비정규직 글짓기 강사인 아내 한소영의 말을 듣고는 경악한다. 소영은 남편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월세도 내지 못하는 점포를 중개업소에 내놨으나 ‘한물간’ 도서대여점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보증금만 챙기고 책들은 고물상에 처분해야 할 상황에 몰린다.

효석은 “영혼이 담긴 책을 어떻게 무게를 달아 파느냐. 그럼 나는, 65㎏ 정도 나가니 650원, 아니 6500원짜리냐”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현실감각이 없고 ‘생활 무능력자’인 남편을 바라보는 소영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서울 대학로 이랑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변태’(최원석 극작·연출)는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성인 또는 예술인의 무너져가는 모습을 우리 사회에서 점차 소멸해가는 도서대여점의 운명에 빗대어 적나라하게 그린다. 제목과 다소 선정적인 포스터에서 연상되는 ‘정상적이지 않은 성욕이나 행위’를 다룬 연극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다면 실망할 수 있다. 극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삶의 틀을 깨고 ‘변태’해 살아남는 인간의 슬픔과, 기존의 사고와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라지는 인간의 절망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보여준다.

효석의 경제적 무능력에 절망하면서도 힘겹게 삶을 유지하던 소영의 마지막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사건은 남편에게 가끔씩 들러 취미생활로 시를 배우며 용돈을 쥐여주던 동네 정육점 주인 오동탁의 ‘변태’다. 속물근성이 똘똘 뭉쳐 있으면서도 순수함을 간직한 오동탁이 ‘고기를 썰며’란 시로 등단을 하고 그가 낸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소영은 마침내 폭발한다. 허물을 벗어던지고 자기 파괴의 형태로 광기를 발산한다.

극은 열정과 냉정, 따스함과 차가움을 오가며 때로는 웃음을 유발하고 때로는 소름을 돋게 한다. 포르노를 보는 고상한 시인 효석을 통해 예술과 인문학의 가치에 대해 길게 설교를 늘어놓지만, 현실 세계에 대한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다. 이 작품의 미덕이자 객석의 공감대를 얻어내는 힘이다. 이유정(소영) 장용철(효석) 김귀선(동탁) 등 실력파 중견 배우들이 열연한다. 공연은 오는 30일까지, 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