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28일 롯데그룹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한 시간 단축하고, 일부 품목의 판매를 중단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중소 상인과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법에 의해 정해진 영업시간을 준수하지 않고 △일부 품목의 판매를 중단토록 한 것은 월권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이 합의라는 형식을 빌려 개별 기업의 경영에 간섭하려 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회의원이 대형마트 판매품목까지 간섭

○을지로위원회의 ‘행정지도’

을지로위원회는 작년 5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결성한 단체로 회원은 42명이다. ‘을(乙)을 지키는 길(路·law)’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민주당은 설명하고 있다. 을지로위원회가 롯데와 맺은 것은 ‘상생협력 및 을의 권리 보호·강화를 위한 10대 추진 과제’이다.

10대 추진 과제 중 핵심은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일부 품목을 팔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밤 12시까지 운영하고 있는 롯데마트를 밤 11시까지만 영업한다는 것.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는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롯데는 을지로위원회와의 합의에 따라 법이 정한 영업시간에도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된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가 이마트 홈플러스와 합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수비라인’을 구축한 것만 봐도 얼마나 당혹스러운 요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며 “국회의원들이 법에 정해진 규정을 무시하고 영업시간을 조정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또 새로 출점하는 점포에는 화원, 열쇠, 도장 매장을 들여놓지 않기로 했다. 아울러 공책, 크레파스, 서예도구, 실로폰 등 주로 학생들이 사용하는 10개 품목은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을지로위원회는 당초 채소 등 일부 식품도 판매 제한 품목에 넣을 것을 요구했으나 협의 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의 경영간섭 우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국회는 입법활동과 정부를 견제하는 활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기업의 영업시간과 판매 품목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고 말했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책무지만 기업을 직접 찾아다니며 압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을지로위원회 소속 김기식 의원실 관계자는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국회의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대기업이 횡포를 부려도 중소기업이 항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따라서 을지로위원회가 중재자로 나서 타협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업계 관계자는 “비록 합의의 형식을 취했지만 걸핏하면 ‘청문회에 나오겠느냐’며 윽박지르는 국회의원들에게 기업들이 맞서기는 어렵다”며 “결국 국회의원들의 뜻대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롯데가 3사 합의를 전제로 영업시간 단축에 합의함에 따라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충분히 검토해 영업시간 단축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