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가업승계 지원보다 '철수' 컨설팅 더 많아
기업인들이 가업을 승계할 때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상속·증여세다. 중소기업중앙회 가업승계지원센터 설문조사에서도 상속·증여세를 걸림돌로 꼽은 응답자가 71.7%로 가장 많았다. 정부가 가업 승계 시 상속세 공제 대상을 연매출 2000억원 미만에서 3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는 등 세제 지원을 강화했지만 공제 요건이 까다로워 실제 세금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이 밖에 후계자가 임원이나 종업원과 갈등을 빚거나(8.7%), 거래처와의 관계 악화로 물량이 축소된다(6.5%)는 것도 가업 승계 시 어려움으로 꼽혔다.

◆PEF, 가업 포기 기업 ‘눈독’

배우자의 상속분을 대폭 늘린 민법 개정안도 가업 승계에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임채웅 태평양 변호사는 “배우자에게 상속재산의 50%를 우선 배정하는 민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가업 승계의 결정권이 배우자에게 넘어간다”며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가업을 2세에 넘기거나 매각하려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가업 승계 포기가 잇따르면서 인수합병(M&A)시장이 커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작년 말 기준 44조원 규모(연기금 등 약정액 기준)로 커진 사모펀드(PEF)들은 가업 승계를 포기한 기업을 주요 인수 타깃으로 삼고 있다. 홍종성 딜로이트안진 전무는 “가업 승계에 뜻이 없는 우수 중견·중소기업을 소개해달라는 PEF의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후계자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고 기업을 외부에 매각한 대표적 사례로는 영실업 네파 한섬 놀부 등이 있다. 농우바이오는 10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때문에 매각작업을 진행 중이다.

◆가업승계지원팀이 ‘철수’ 컨설팅

가업 승계를 하지 않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로펌과 회계법인 등에선 이른바 ‘가업 승계 포기 컨설팅’이 성행하고 있다. 후계자에게 기업을 물려주지 않고 외부에 매각 또는 청산하거나 세금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재산분할 방안을 컨설팅해주는 사업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로펌과 회계법인에 꾸려진 가업승계지원팀이 가업 승계를 지원하는 사례보다 가업 철수를 컨설팅하는 사례가 더 많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들린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자산관리팀’을 구성, 가업 승계를 포기한 중소·중견기업 자문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3월 팀을 꾸릴 때만 해도 변호사 12명이었던 자산관리팀이 현재는 30명으로 구성된 대형팀으로 성장했다. 법무법인 율촌은 중견기업 오너들의 재산관리를 담당하는 은행과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를 타깃으로 컨설팅을 강화하고 있다. PB에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매각하려는 기업의 문의가 들어오면 법률 서비스를 따내기 위한 포석이다.

삼일회계법인은 작년 하반기 M&A를 자문하는 사업부 내 ‘딜 리서치센터’에서 자동차부품업체들의 지배구조와 재무상태를 전방위로 조사했다. 상당수 자동차부품업체 창업자의 은퇴시기가 다가오면서 매각이나 2세를 위해 신규 사업에 진출하려는 기업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대신증권은 가업 승계와 관련한 중견·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가업 승계 PEF’를 구상하고 있다. 세금 부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후계자들을 위해 일정 지분을 인수하거나 아예 주요 지분을 사들이는 펀드다.

하수정/임도원/정영효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