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서 산학협력이 안되는 진짜 이유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건강한 국가를 뽑으라면 독일을 우선 들 수 있다. 독일은 경제 구조상 가장 바람직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 경제의 힘은 탁월한 엔지니어링 능력과 제조기반에서 나온다. 영국도 한때 엔지니어링에서 뛰어났지만, 제조기반이 무너지면서 그 능력을 잃게 됐다. 독일은 현재 유럽의 ‘위기 해결사’가 됐다. 유럽에 경제문제가 생기면 모두들 독일을 바라보는 형국이다.

독일은 한국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2차대전 후 분단된 국가이며, 제조업 기반 경제라는 점에서다. 지멘스, 바스프, 폭스바겐, BMW, 보쉬 같은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화학, 자동차 업체 등 제조업 중심 기업이 독일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독일은 이들 기업 덕택에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통일 독일이 잘 운영되는 이유도 엔지니어링과 제조기반에서 형성된 탄탄한 경제력 덕택으로 설명된다. 이런 점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도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사회적으로 북한과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융합을 이루려면 돈이 필요하다. 독일처럼 건강한 경제구조를 갖춰야 통일 이후 북한의 재건을 위한 기금을 마련할 수 있다.

독일은 어떻게 지금의 탄탄한 경제구조를 갖출 수 있었을까. 독일 경제의 힘은 앞선 기술력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 기술력은 중소 부품기업에서 나온다. 한국처럼 독일의 중소 부품기업도 대기업에 비해 임금과 복지에 차이가 있다. 당연히 독일 중소기업도 인력채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 중소기업과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산학협력구조만큼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독일 중소기업은 인력난을 대학과의 산학협력으로 일부 해소한다. 독일에서 산학협력이 잘 되는 이유로 출연연구소 대학 기업의 연결을 들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산학협력 인프라다.

독일 대학들은 기업이 제품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데 필요한 각종 시험 설비를 갖추고 있다. 반면 한국 대학에는 제품개발 기간 단축과 관련된 설비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우리 대학들은 예외 없이 논문을 쓰는 데 필요한 설비 위주로 갖추고 있다. 대학의 연구장비가 산학협력에 사용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이것이 한국에서 산학협력이 형식적으로 끝나는 이유다.

항공기, 가전제품, 자동차, 의료기기 등의 신제품을 개발할 때 소비자 요구와 각종 규제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테스트를 대학이 할 수 있어야 산학협력이 가능해진다. 독일 대학은 중소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예외적이고 극한 상황에서의 테스트를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을 통해 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습도 90%, 고도 2000m, 영하 50도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 새로 설계한 모터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기능은 제대로 수행하는지를 시뮬레이션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기업에 제공한다. 기업은 이런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유용하게 사용한다. 자체적으로 행한 테스트와 대학의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비교하며 새로 개발하는 제품을 검증한다. 이를 통해 신제품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대학의 구조는 정부 평가에 의해 변하기 마련이다. 논문 수를 중시하는 정부의 대학 평가 탓에 한국 대학은 ‘논문 양산의 늪’에 빠져 있다. 물론 논문 생산도 중요하지만 너무 치우쳐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정작 경제의 빈 곳을 메워줄 수 있는 ‘실용연구’ 기능은 매우 약화돼 있다. 정부의 대학 평가에 산학협력 인프라 구축 여부를 반영해야 하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산학협력을 더 활성화해 중소기업을 살려야 경제가 살고, 경제가 살아야 통일에도 대비할 수 있다. ‘통일 대박’을 위해 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유지수 < 국민대 총장 jisoo@kookmi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