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기업 "한국 경영환경은 69점"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주로 한국 기업을 상대로 영업하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계속 성장하느냐 여부가 중요합니다.”

2012년 9월 경북 영주에 총 4억달러를 투자해 알루미늄 리사이클링 공장을 세운 노벨리스코리아의 샤시 모드갈 사장은 “한국 기업들의 생산이 늘어야 알루미늄 매출이 증가한다”며 부진한 한국 경제에 우려를 드러냈다. 경제민주화 입법으로 기업가정신이 위축된 데다 원고·엔저 영향으로 국내 기업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자 국내 진출 외국 기업들 역시 경영 환경이 나빠진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8일 인텔 지멘스 도시바 등 주요 외국계 기업 26곳의 최고경영진을 대상으로 ‘경영 및 투자환경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10곳 중 3곳 이상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경영 환경이 전년에 비해 나빠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나아졌다’는 응답은 1곳도 채 되지 않았다.

작년 경영 환경을 묻는 질문에 58%가 전년과 ‘비슷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조금 나빠졌다’와 ‘많이 나빠졌다’도 각각 30%, 4%에 달했다. ‘조금 나아졌다’(4%)와 ‘나아졌다’(4%) 등 긍정적 답변은 10%에 못 미쳤다. 다른 나라와 비교한 한국의 경영 환경 점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69점에 불과했다. 강도가 세진 세무조사와 통상임금 및 노사 불안 등이 경영 환경 악화 요인으로 꼽혔다.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는 “기업인을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국내외 기업 모두가 투자를 꺼리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원점에서 각종 규제를 과감히 풀고 경제민주화 법령도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보다 세무조사 등 정책 리스크가 크다"

외국기업 "한국 경영환경은 69점"
한독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0월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외국계 기업들은 경영환경에 낮은 점수를 줬다. 2012년과 비교한 경영환경에 대해 ‘안 좋아졌다’는 응답이 42.86%에 달했다. ‘좋아졌다’는 응답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투자환경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는 ‘평균 수준’에 그친다는 답이 57.14%였다. KOTRA 외국기업고충처리단의 애로사항 처리 건수도 지난해 383건으로 전년(348)에 비해 10%가량 늘어났다.

외국계 기업들은 새 정부 들어 강화된 세무조사와 공정거래 관련 조사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 기업의 50%가 지난해 경영환경이 나빠진 요인으로 ‘세무조사 등 과도한 규제와 압박’을 꼽았다. 다음은 ‘경기 침체’(24%) ‘경제민주화 법안’(13%) ‘통상임금 등 불확실성’(13%) 등의 순이었다. 부족한 복지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세무조사 강화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앞으로 가장 부담이 될 요인’에 대해서도 43%가 ‘세무조사 등 과도한 규제와 압박’을 지목했다. 또 통상임금(18%)과 각종 투자인센티브 축소(18%) 등에 대한 우려도 컸다. ‘북한 리스크’라는 응답은 10%에 그쳤다. 외국계 기업들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정부의 반기업 정책을 더 걱정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설문에서 외국계 기업 단체들이 “경영환경에 대해 직접적인 코멘트를 하기는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한 것도 자칫 관련 기업이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중소기업 위주의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 “통상임금 때문에 경영계획을 짤 수 없다” 등 볼멘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경영환경이 더 악화되더라도 78%는 ‘한국에서 철수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15%는 ‘그때 가서 판단할 것’이라며 철수 가능성을 열어놨다. ‘메리트가 없다면 과감히 떠날 것’이라는 답변도 7%나 돼 ‘탈(脫)한국’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병순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두 명의 노동자만 신청하면 만들 수 있는 노조 설립 요건 등 너무 관대한 노동법규는 외국계 기업에 상당한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며 “각종 규제와 법규를 글로벌 기준에 맞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9일 외국인 투자기업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외국인 투자 확대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나눌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욱진/배석준 /이미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