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지도 바꾸는 美…오바마 취임후 100개 기업 'U턴'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방적업체를 운영하는 주산칭 기어그룹 회장은 최근 2억1800만달러를 들여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랭커스터카운티로 공장을 옮기기로 했다. 중국 내 인건비가 수년째 연 7% 넘게 오르는 데다 전기세 등 세금마저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이주 장소를 고민하던 주 회장은 캘리포니아주에 점을 찍었다. 주정부가 전기세를 보조해주는 것과 완제품을 중앙아메리카 전역에 무관세로 유통시킬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1㎏의 직물을 만들어내는 데 중국에서 드는 비용이 4.13달러인 반면 미국에서는 3.45달러면 충분했다.

‘세계의 공장’이 되기 위한 선진국의 제조업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선진국 정부는 앞다퉈 세금 혜택, 재정 지원 등 파격적인 선물 보따리를 내놓고 있다. 해외로 나간 기업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을 장려하기 위해서다.

◆치열해진 ‘굴뚝 유치’ 경쟁

제조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당시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금융 및 부동산 관련 기업의 수익은 급감한 반면 애플, 폭스바겐 등 제조사들의 수익은 크게 늘었다. 포브스2000에 속한 제조업체의 비중도 2003년 39%에서 2011년 47.7%로 늘었다. 제조업은 나라 경제의 기초 체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주목받았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한 독일, 북유럽 국가들은 유럽 재정위기 속에서도 꿋꿋했던 반면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제조업이 취약한 남유럽 국가들은 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선진국 정부는 제조업에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제조업 부흥 정책인 ‘리메이킹 아메리카’가 방아쇠를 당겼다. 미국은 설비투자 세제 혜택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고, 이전 비용을 최대 20%까지 지원했다. 법인세도 35%에서 28%로 낮췄다.

장기 불황에 시달리던 일본도 엔저(低) 바람을 타고 제조업 부활 정책을 폈다. 기업규제 법안 폐지를 시작으로 법인세를 40.69%에서 38.01%로 인하했다. 2015년엔 35.64%까지 낮추기로 했다. 소니, 샤프, 캐논, 도요타, 혼다 등은 해외로 가는 대신 자국 내 생산시설 확충을 택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들도 나섰다. 독일은 2007년 51.8%에 달하던 법인세를 38.7%로 낮췄다. 금융위기가 터지자 29.8%로 재인하했다.

◆美 셰일 붐·中 임금 인상 영향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매출 10억달러 이상인 미국 제조업체 최고경영자(CEO)의 37%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예정이거나 계획 중이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과 인도 등에서 유턴한 미국 기업은 100여개에 이른다. 미국 3대 자동차 회사인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가 대표적이다. 애플과 구글도 중국 진출 약 10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온다. 미국 회사뿐 아니다. 150년 역사의 독일 화학업체 바스프도 내년부터 연구개발(R&D)센터와 공장을 독일에서 미국으로 옮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외국계 자동차 공장도 15개에 달한다.

기업들의 미국행이 잇따르면서 일자리도 늘었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지난 3년간 제조업 분야 신규 일자리 50만개가 새로 창출됐고, 이 중 3만5000개 이상이 리쇼어링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들이 미국으로 몰리는 건 ‘셰일 붐’의 영향이 가장 크다. 에너지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 이점도 작용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생산함으로써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는 데다 관세 혜택도 크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마크 뮤로 연구원은 “미국의 ‘리쇼어링’은 자국 기업의 귀환뿐 아니라 세계의 제조업체가 미국으로 모이는 현상”이라며 “리쇼어링은 앞으로 5년간 빠르게 진행돼 제조업의 새 르네상스를 가져올 것”이라고 해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리쇼어링은 20세기와 21세기의 제조업 패러다임이 바뀌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인건비가 싼 곳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게 20세기의 패러다임이었다면 21세기 제조업은 ‘수요가 있는 곳에 공장을 만든 뒤 부품을 생산해 조립해 판다’는 것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