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남과 북, 거꾸로 가는 시계
남과 북 어느 쪽일까. 가상 실험을 해 보자. 남한과 북한의 생활조건에 관한 객관적 자료를 보여주고 실험군을 국내외 한민족과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으로 나눠 남한과 북한 중 어느 곳에 살 건지를 선택하도록 하되, 이를 중요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에 따라 반복적으로 시행하도록 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알아보는 실험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매우 싱거운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뻔한 실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점을 1970년대 이전으로 돌리거나, 남쪽이 군사독재의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한 1980년대 중반까지로 돌린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 또 국내외 한민족 가운데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선택은 북한에서의 악몽이나 그저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따라 갈릴 수도 있다.

탈북자들의 경우는 어떨까. 과거 한동안 북한 탈출은 ‘자유’라는 프레임으로 통용됐다. 그러나 ‘자유세계’라는 이데올로기가 허구임과 더불어 자유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살 수 없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지만 남한의 거대한 자본주의 구조물에서 자리를 잡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최소한 물질적 조건을 갖추는 일조차 만만치 않았다. 남한 사회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절망이 싹트기 시작한 탈북자들과 이들의 2세, 3세들의 선택은 무엇일까. 탈북자들이 북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늘었다지만 그래도 다시 북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와 나라, 미래에 대한 희망, 특히 밑바닥 탈출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남쪽에 머문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선택이 아니다.

남북 간 체제경쟁은 끝났다.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적 분단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평등의 문제는 불평등한 현실과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저들보다 나은 우리일 수 있게 해 주는 조건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반성해야 하는 이유다.

다시 시계를 오늘로 돌린다. 2013년 12월18일 현재, 선택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분명해진 것 같다. 갑자기 우리 모두를 ‘멘붕’에 빠뜨린 장성택 즉결 처형 사건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의 조건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소름끼치는 계기였다. 우리가 왜 인권과 민주주의, 법치를 최고의 가치로 세워 지켜 나가야 하는지를 그보다 더 극적으로 깨닫게 해 준 적은 없었다. 상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내용만 가지고도 인류의 보편적인 문명징표를 이루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은 포악한 생명 말살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무자비하게 압살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며 적개심과 증오를 뿜어내는 야만의 얼굴을 본다. 누가 이런 공포의 땅을 택할까.

이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2013년은 한마디로 비이성이 판친 한 해였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논란,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정치인 막말 사건 등 곳곳에 비이성과 음모, 간지로 얼룩진 한 해였다. 이제 한 해가 가기 전에 아니 새해를 맞이하면서 이성을 되찾아야겠다. 북한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안보에 만전을 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안의 통합과 신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는 인권과 민주, 법치를 국가 최고의 가치로 삼는 나라다. 그러므로 1년 이상 국정을 혼란과 마비상태로 내몬 국정원 댓글 사건도 여야 간 격한 감정 대립을 불러일으킨 장하나 양승조 의원의 발언 파문도, 여야가 옥신각신해온 국정원 개혁문제도 모두 우리가 북한보다 왜, 무엇이 더 나은 나라인지, 우리가 지키고 고양해 나가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라는 관점에서 이성적으로 풀어 나갔으면 한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