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덕밸리, 한국만의 리그여서는 안돼
대덕특구가 올해로 설립 40주년을 맞았다. 대덕연구단지, 대덕밸리 등 여러 이름을 거쳐 왔지만, 시작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3년에 재가한 ‘대덕연구학원도시’다. 연구소와 학원이 공존하는 지적 공동체를 만들어 국가 발전을 위한 기술개발과 인재양성을 추진하는 것이 대덕특구를 태동시킨 근본이념이다. ‘두뇌 도시, 녹지가 보존된 과학공원도시, 연구와 학문을 생활화하는 도시’가 당시에 제시된 이상향이었다.

대덕특구는 연구학원도시에서 연구단지의 특성을 살려가며 쉬지 않고 발전해 왔다. 80년대 초반까지는 국내 산업에 직접 응용할 수 있는 실용기술을 개발해 국가 빈곤 탈출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고, 그 후부터는 TDX(시분할전자교환기), CDMA(디지털이동통신시스템), 우리별 1호, 나로호 발사 성공 등 한국을 세계 속의 과학 강국으로 성장시킨 주요한 인재양성 및 연구개발을 이끌었다. 대덕특구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발달사와 직결되는 셈이다.

하지만 성과에 자만하거나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지속적인 혁신과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지난 40년간의 노고를 통해 과학입국의 사명을 감당해왔다면, 지금부터는 창조경제의 산실이 돼 대한민국의 발전방향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더욱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 교육, 의료, 국방, 경제, 농업 등 사회 모든 분야에 접목할 수 있는 과학 기술 역량과 맡은 업무에 헌신적으로 공헌하는 리더십을 겸비한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 창업 생태계도 마련돼야 한다. 벤처를 통해 창조경제를 이끌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아무런 인프라 없이 젊은이들에게 창업을 권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술개발-창업-성장이 선순환하는 시스템이 완성되려면 벤처 현장에 뛰어든 실무자에게 귀 기울이고, 그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이 도입돼야 한다. 창의적인 인재 조건이 충족돼도 창의적인 정책이 없다면 창의적인 성과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규정이란 것은 합리적인 울타리여야 한다. 생각과 활동을 제한하는 벽이 돼서는 안 된다. 기존에 ‘명시된 것’만을 허락하는 행정 체계 속에서는 새로운 것이 나오기 어렵다.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양성을 보편성으로 인정하는 문화와 국제적인 생활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덕특구는 더 이상 ‘대한민국만의 리그’가 돼서는 안 된다. 해외에서 모여든 우수한 인재들이 협력하고 공존하는 세계 과학기술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 외국 연구원이 ‘대덕행(行)’을 선택할 때 오로지 과학적 성취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전략적이고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해외 연구원이 가족의 생활이나 교육 문제로 대덕특구를 떠나는 문제도 바꿔나가야 한다.

KAIST는 지난 7월 ‘케이밸리(K-Valley)’ 구축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과학기술분야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KAIST가 구심점이 돼 정부 출연 연구소들과 시너지를 창출해내는 프로그램이다. 연구 분야에 대한 단순 협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재양성과 융합연구, 실용화 연구와 체계적인 사업화 지원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대덕특구를 미국 실리콘 밸리와 같은 혁신 클러스터로 만들고자 하는 밑그림이다.

대덕특구가 그렸던 초기의 이상향은 ‘연구와 학문을 생활화하는 도시’였다. 제2의 도약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돌아봐야 할 것은 초심(初心)이다. 연구소와 학계가 어우러지는 지적 공동체를 이루고 혁신적인 과학기술로 도약하는 ‘처음의 꿈’을 위해 노력한다면 대덕특구는 지난 40년간 이룩한 한국, 한국인의 기적을 넘어 전 인류의 삶에 기여하는 더 큰 미래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강성모 < KAIST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