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잡담은 생산성 높이는 촉매…BoA도 우리 분석대로 업무 혁신"
회사에서 직장 동료끼리 나누는 잡담은 업무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미국 최대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경영진도 이같이 생각했다. 특히 고객과 1 대 1로 대화하는 콜센터에서는 직원 간 대화를 줄여야 업무 효율이 높아진다고 믿었기에 점심시간을 일부러 엇갈리게 배치했다.

하지만 미국 보스턴의 빅데이터 기술 벤처기업인 ‘소시오메트릭 솔루션즈’가 직원들에게 센서를 부착해 업무 패턴을 분석한 결과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동료와 자주 대화하고 유대감이 강한 팀에 속한 직원일수록 생산성이 높았던 것. BoA는 1만여명이 넘는 콜센터 직원들이 팀원들과 점심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스케줄을 재조정했고 연간 1500만달러(약 160억원)에 달하는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이 실험 결과는 포브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주요 언론에 실리고 기존의 경영이론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 벤처기업의 공동창업자이자 핵심 연구자 중 한 명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여성 엔지니어인 김태미 씨(32·사진)다.

○센서로 대화·몸짓 분석

소시오메트릭 솔루션즈에서 최고 과학자(chief scientist)를 맡고 있는 김씨는 대전과학고, KAIST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와 MIT 미디어랩에서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HCI)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서울 도곡동에서 만난 그는 “센서를 통해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와 몸짓 등의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한다”며 “인간 행동이 스트레스, 실적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왔다”고 설명했다.

MIT의 인간역학연구실 지도교수·동료들과 함께 차린 소시오메트릭스 솔루션즈도 이 같은 연구의 연장선상이다. 일정 기간 고객사 직원들에게 블루투스·적외선·음성감지 기능을 탑재한 센서를 부착해 누가 누구와 대화하는지, 대화할 때 말투는 어떤지 등을 측정한다. 사생활을 존중해 대화 내용은 감지하지 않는다. 조사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업무실적, 스트레스, 팀 화합 등 회사가 개선하고자 하는 지표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분석한다.

BoA, 글로벌 가구업체인 ‘스틸케이스’, 미국 제약사 ‘큐비스트’,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등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벤 웨이버 대표와 함께 방한한 김씨는 “짧게 이어지는 몇 번의 회의만으로 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인수합병(M&A) 대화도 연구 주제 중 하나”라며 “국내 정보기술(IT) 서비스 회사와도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네트워크 만들어야

한때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기를 꿈꾸며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도 한 김씨는 한동안 “이공계 학문을 했어도 실생활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잘 몰랐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휴먼 컴퓨팅 분야를 알게 된 이후 연구에 재미가 붙었다”며 “소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빅데이터 분석 등은 앞으로 시장이 큰 폭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기술벤처를 차린 한국인 여성 엔지니어가 드물다는 질문에는 “비즈니스 기반 기업이라기보다 기술 기반 기업이다 보니 학계와 긴밀하게 이어져 있어서 오히려 이질감이나 소외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여성이 과학·공학을 했을 때 섬세해서 유리한 점이 많은 만큼 더 많은 후학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예비창업자를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현지로 가서 네트워크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김씨는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네트워킹 파티가 무수히 많다”며 “네트워킹도 ‘능력’인 현지 문화에 적응해 인맥을 쌓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