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베트남전 파병 장병을 태우고 부산항을 떠나는 군함 앞에 환송 나온 가족과 학생들이 몰려 있다. /글항아리 제공
1960년대 베트남전 파병 장병을 태우고 부산항을 떠나는 군함 앞에 환송 나온 가족과 학생들이 몰려 있다. /글항아리 제공
부산을 말할 때 나오는 수식 중 하나는 ‘제2의 도시’라는 낡은 관념이다.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줄세우기식 관념이 부산의 정체성을 단순히 ‘두 번째 큰 도시’로 제한해버린 것이다.

[책마을] 갈매기 슬피우는 부산항엔 역사가 숨쉰다
《부산은 넓다》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두 번째니 세 번째니 하는 줄세우기는 이제 큰 의미가 없다. 도시의 독자적 가치와 문화, 삶의 질과 양태를 찾아내고 이를 간직하는 게 그 도시의 수준을 결정하는 시대다. 부산박물관의 학예연구사인 저자는 ‘지역인문학’이라고 부를 만한 이 책에서 부산과 관련한 신문기사와 대중가요, 문학작품 등을 통해 도시의 역사와 시민들의 삶을 길어올린다.

‘부산은 항구다.’ 저자가 생각하는 부산의 첫 번째 정체성이다. 일제가 주도해 건설한 부산항은 동아시아 제패를 위한 전초기지였다. 일본의 산요철도와 조선의 경부선을 연결하는 수탈의 산파였다. 일제강점기의 부산 역사가 치욕이었던 이유다.

1950년대에도 부산항은 전쟁·원조 물자가 들어오는 슬픈 항구였다. 산업화 시기에는 정부가 주도한 이민자들과 파월 장병, 원양어선을 탄 뱃사람들이 부산항에서 이역만리로 떠났다. ‘잘있거라 부산항’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부산을 노래하는 숱한 대중가요들이 탄생하고 인기를 얻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부산의 역사는 이 도시만이 아닌 한국의 역사이기도 했다.

물자가 들고나는 최일선인 만큼 부산은 거칠지만 열려 있는 도시다. 부산은 새로운 문화를 개방적으로 수용해 재창조해왔다.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다방문화가 시작됐다. 1953년 7월24일 신문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급자기 흩어져버린 활동 체계의 혼란 속에서 피차의 연락조차 두절되어 자연 누구를 만나보거나 찾아보려고 하여도 혹시나 하고 다방에 가볼 수밖에 없었고….’

부산에 얽힌 시민들의 기구한 삶도 꼼꼼하게 훑어 복원한다. 부산 영도다리는 전쟁과 산업화 중에 입은 상처로 인해 시민들의 투신자살이 이어졌던 곳이다. 1952년 11월 자살을 기도한 정효연(당시 21세)이 그런 사례다. 남편이 전쟁터로 나가자 시어머니는 딸과 그를 학대했고 딸은 중병을 얻었다. 그는 영도다리로 가 딸을 파도 속에 던지고 따라서 투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구조됐고 그는 살인미수 혐의로 법정에 섰다.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재판에서 판사는 사건의 책임이 사회에 있다며 낮은 형량의 판결을 내렸고 출감 후 생활 방도까지 마련해줬다.

책은 이 외에도 밀면이 일궈낸 부산의 맛과 ‘누들문화’, 해운대와 송도해수욕장에서 보는 물놀이와 유혹의 역사 등 부산의 12가지 문화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저자는 부산이 1970년대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담긴 조용필의 시대정신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매번 새로운 것을 찾으며 여전히 ‘가왕’으로 불리는 조용필처럼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순환’과 ‘재생’, 육지와 바다를 잇는 ‘소통’에 바탕을 두고 인문정신을 창조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속초시가 피란민 기록조사에 나서고, 인천시가 달동네를 문화콘텐츠로 삼아 달동네박물관을 만드는 등 도시의 역사와 인문학이 강조되는 시대다. 수도권 중심 구조에서의 탈피는 지역 스스로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고 지켜나가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그런 작업의 모범이 될 만한 책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