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硏 수장 줄사퇴…과학계 '술렁'
정부의 공공기관장 물갈이가 과학기술계로 확산될 조짐이다. 임기를 상당 기간 남겨둔 정부 출연 연구기관장들이 갑작스레 사표를 내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정권 초 정치와 무관한 연구개발(R&D) 분야 기관장까지 일괄 사표를 받던 과거 정부의 인사 관행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이승종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지난주 ‘일신상의 사유’로 미래창조과학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인 이 이사장은 지난해 1월 취임했다. 2015년 1월까지 임기가 1년4개월가량 남아 있는 상태에서 돌연 사퇴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태인 한국기계연구원장도 최근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 출신으로 2011년 11월 취임한 최 원장은 내년 11월까지 임기가 남아 있다. 앞서 7월 초에는 이준승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이 임기 1년여를 앞두고 중도 퇴임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세 명의 과학기술 분야 기관장이 중도 퇴임한 것이다. 이 밖에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도 내년 5월까지 임기를 남겨두고 있지만 과학계에서는 중도 사퇴설이 돌고 있다. 창의재단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사퇴를 권유받았거나 퇴임을 고려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최문기 미래부 장관은 취임 초 “출연연 기관장에 대한 인위적인 물갈이는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 분야 기관장까지 교체하던 관행을 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정부의 공공기관장 교체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과학 분야 일부 기관장이 사퇴해 본격적인 물갈이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사의를 밝힌 기관장들의 퇴진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게 이 같은 관측의 배경이다. 최 원장은 기관 평가에서 ‘미흡’ 판정을 받은 게 사유로 거론됐다. 하지만 이 평가 결과는 전임 원장 재임 기간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기계연 내부에서도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후임 기관장에 정치와 연관된 사람들이 거론되는 것도 물갈이 확산의 추측 배경이 되고 있다. KISTEP 원장에는 정치인인 박영아 전 새누리당 의원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재단 이사장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연구재단 이사장은 연간 2조원이 넘는 대학, 출연연의 R&D 예산을 배분하는 막강한 자리로 봉급과 처우 등에서 장관급 예우를 받는다. 현 정부에 기여한 인사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정부가 중도 퇴진을 요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올 연말과 내년 초 임기가 끝나는 출연연 원장들도 상당수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이미 신임 기관장을 선임하기 위해 후보자를 3배수로 압축했고,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이달 말까지 후보자를 공모하고 있다.

과학기술계 한 원로는 “R&D를 담당하는 과학 분야는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게 해줘야 저변이 넓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와 관련, 미래부 관계자는 “과학기술 분야 기관장을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겠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