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을 떠올려보자. 알자지라 방송, 폭탄 테러, 부정한 여인에 대한 친족 살해, 종교 탄압, ‘아랍의 봄’ 이전은 물론 그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정치 소요 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아랍의 소비자는 종교적 광신자, 석유로 부호가 된 왕족, 소말리아 해적, 베일을 쓴 여성, 서구 문화를 경멸하도록 교육받은 어린 소년·소녀들이었다. 이런 이미지는 매우 다양한 문화와 사회의 정형화된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 말고 진정한 아랍 소비자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전무하다.”

[책마을] 3억5000만 내수시장 '꿈틀'…아랍의 가능성 베일을 벗다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의 매콤경영대학원 종신교수이자 세계적 마케팅 석학인 비제이 마하잔은 《아랍 파워》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자는 현지 시장을 3년에 걸쳐 직접 발로 뛰며 시장조사한 이 책에서 3억5000만 소비자가 존재하는 아랍 시장의 특성을 소개한다.

최근 들어 길을 잃은 채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아랍의 봄’은 분명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것은 서구의 미디어가 만들어낸 지독한 클리셰(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더불어 생경한 무슬림의 생활문화인 돼지고기 금식과 금주, 이슬람 율법에 따라 제조한 할랄 음식과 할례, 일부다처제 등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존재하지만 이는 사막이라는 극한 지역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지혜로 코란이 제시한 것들이다.

이제 조금 다른 차원에서 아랍을 들여다보자. 아랍 세계는 아라비아 반도, 걸프지역 국가(GCC), 그리스와 이집트 중간 지역인 레반트(Levant), 지중해 연안과 마그레브 지역을 잇는 북아프리카 국가들로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지역이다. 쉽게 말해 아랍연맹에 가입한 22개국을 가리키며 이스라엘과 이란, 터키는 제외한다.

한국이 이런 아랍 세계와 처음으로 접촉한 것은 신라시대 이후다. 고려시대에는 아랍 상인들이 개성의 관문 역할을 하던 국제무역항인 벽란도에 거점을 잡은 바 있지만, 우리와 아랍 무슬림의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500년이 더 지나서다. 그런데 지난 50년간의 접촉은 기나긴 역사의 공백은 채웠지만, 산유국인 아랍 국가를 중심으로 원유와 플랜트, 해외 건설이라는 경제 중심의 편향된 접촉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빈 구석은 많다.

아랍 세계의 넘치는 오일 머니는 아랍의 소비 시장을 풍성하게 형성했다. 이제는 아랍의 내수 시장을 향해 눈을 돌려야 한다.

이 책은 3억5000만 소비자가 존재하는 아랍 시장의 특성을 청년 시장, 중산층 시장, 여성 시장, 기술 시장, 오락미디어 시장, 디아스포라 시장 등으로 나눠 각 시장을 사로잡는 비즈니스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언뜻 소비자 9억명을 지닌 아프리카 시장과 비교하면 경제적 파이가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아랍의 3억5000만 소비자 가운데 대부분은 ‘아라비아2’라고 불리는 중산층에 속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중산층은 막강한 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하며 아랍 소비 시장을 변화시키고, 아랍 세계에 다가가는 기업들에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코카콜라, 유니레버, P&G 등 수많은 다국적 기업과 삼성, LG, 현대 등의 국내 기업이 어떻게 이 지역의 생경한 문화적·종교적 규범을 존중함으로써 성장하는 거대 시장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구축할 수 있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문에 나오는 현지 시장 사례와 기업의 고위 간부부터 잡화점 통로에서 만난 쇼핑객에 이르기까지 수백명과의 인터뷰는 베일에 가려진 아랍 세계의 경제를 들여다보며 그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기에 손색이 없다. 실크로드를 오가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던 아랍 상인과 협력하는 새로운 시대를 상상해 보았는가.

아랍 시장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에 이 책이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심의섭 명지대 명예교수·아랍아프리카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