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희 씨의 ‘희망의 원’.
한경희 씨의 ‘희망의 원’.
우물을 연상케 하는 대좌 위에 하얀 모래가 가득 채워져 있다. 한 관객이 다가가서 모래를 주무르자 오색영롱한 무지갯빛 색채가 모래 위에 추상적인 문양을 그린다. 관객은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마법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과 함께 짜릿한 희열감에 빠져든다. 천장 스피커에서는 신비로운 음악이 흘러나와 흥분을 더욱 고조시킨다.

평창비엔날레(예술총감독 안광준)가 열리고 있는 강원 동해시 망상 앙바엑스포 전시관. 미디어아트 경연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첨단 테크놀로지를 총동원한 다양한 기법의 전시작이 관객을 즐겁게 한다.

지난달 20일 개막한 평창비엔날레가 개막 4주째로 접어들었다. 강원문화재단 주최로 지난 5월 사무실을 열고 7월20일 개막한 이 행사는 불과 두 달이라는 짧은 준비기간에 무모하게 국제행사를 치른다는 비난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전시팀이 국민공모, 작가 탐방 등을 통해 백방으로 작품을 모은 결과 나름대로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제1전시관에 설치된 작품과 야외조각들은 전반적으로 주최 측이 내건 ‘관객 친화적인 비엔날레’라는 콘셉트에 걸맞은 것이었다. 추상·개념 미술을 최소화하고 구상미술이 주류를 이룬 것은 그런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일부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작품들이 눈에 띄지만 이는 의욕에 찬 신진작가를 발굴·육성하겠다는 주최 측의 의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망상 제2전시관에는 흥미로운 작품이 많이 눈에 띄었다. 3차원(3D), 프로젝션 매핑(maping) 등 첨단 테크닉이 총출동, 최근 미디어아트 동향을 한눈에 살필 수 있게끔 꾸며졌다. 지난 주말까지 3주 동안 다녀간 관람객은 모두 9만5330명으로 이 중 망상 전시관을 방문한 관람객은 1만4435명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국제전으로서는 다소 미흡하지만 전반적으로 대중성 확보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출품작 대부분이 친근한 형태의 구상작품이어서 복합리조트인 알펜시아를 방문한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미디어아트전에도 관객이 작품 완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작품과 체험을 유도하는 작품이 대거 출품돼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다만 강원도와 평창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13일 망상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3 평창비엔날레의 성공과 비전’ 심포지엄에서 “비엔날레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도시정체성 정립을 통해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며 대관령 거주 작가 프로그램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작가로 하여금 지역 커뮤니티와 교감하게 함으로써 지역 정체성이 반영된 작품 제작이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