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챔피언을 키우자] 獨 히든 챔피언 43%, 100년 이상된 가족기업
독일 히든 챔피언 기업의 성공 비결을 공부하기 위해 중소기업 1, 2세들로 구성된 한국가업승계기업협의회 회원 36명이 지난달 말 안드레아스스틸 본사를 찾았다. 전기톱을 발명한 스위스계 엔지니어 안드레아스 스틸이 1926년 자신의 이름을 붙여 만든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8억8700만유로(약 1조3305억원)의 88.1%를 수출로 벌어들였다.

이 회사의 이사회 의장은 창업자의 손자인 니콜라스 스틸이다. 회사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아버지 형제인 루드거 스틸, 니 스틸, 한스 피터 스틸, 에바 마이어 스틸 등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스틸 의장은 “회사의 주요 현안은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한다”며 “가족들로부터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안드레아스스틸이 몇 해 전 전기톱의 핵심 부품인 모터 생산라인을 확대해 트랙터 등에 사용하는 중대형 엔진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안건을 제출했을 때 이사회에서 격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스틸 의장은 “합의를 이끌어내기 힘들었지만 논쟁을 벌이는 동안 위험 요인도 제거하고 더 철저하게 준비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가족 기업의 가장 큰 단점이자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안드레아스스틸은 스틸 의장을 뺀 나머지 이사회 멤버들이 내년 모두 퇴진하고 7명의 자녀(의장의 사촌)가 새 멤버로 들어온다.

1668년 설립된 최고령 화학·의약 기업인 머크는 12대, 345년째 가족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머크가를 대표하는 10~13대 가족 217명 중 130명이 지분의 70%를 나눠 갖고 회사의 주요 운영방침을 결정하고 있다. 이사회 의장인 하버캄 머크 회장은 “가족들이 논의하다 보면 이견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접점을 찾아간다”며 “가족관계와 회사운영을 잘 하면 그보다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지배구조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족기업 전문가인 김선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FB솔루션 대표)는 “가족 기업들은 대부분 위기에 강하고 기회에 빠르다는 장점을 보여주고 있다”며 “히든 챔피언 기업 중 3분의 1 이상이 이런 가족기업 형태로 100년 이상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고 말했다.

미하엘 보이보데 독일 만하임대 교수도 “독일의 히든 챔피언 기업의 43%가 1인 경영이 아닌 가족 공동경영을 통해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 히든 챔피언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현재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이 1994년에 쓴 저서 ‘히든 챔피언’에서 처음 거론한 용어다.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 연간 매출 40억달러 이하, 수출 비중 50% 이상 기업 중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업체.

바이블링겐=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