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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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청년이 바둑 중계방송 해설에 청춘을 바쳐 60대가 됐네요. 30년 동안 현대 바둑의 중요 장면을 제 목소리로 중계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조훈현, 이창호 9단이 타이틀을 차지해 바둑의 인기를 높였다면 전 중계방송으로 바둑 보급에 기여했지요.”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을 바둑 중계방송 해설에 힘 쏟은 노영하 9단(62·사진)이 제2의 바둑인생을 시작한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에서 만난 노 9단은 “나를 끝으로 바둑해설 1세대가 마감된다”며 지난 30년 바둑 중계의 추억을 풀어냈다.

바둑 중계방송과의 긴 인연은 1983년 KBS바둑왕전의 해설위원을 맡으며 시작됐다. 신문 기보가 바둑 해설의 주를 이루던 당시 생생하게 대국을 보여주는 바둑 TV중계는 큰 인기를 얻었다.

노 9단은 KBS바둑왕전 2기부터 해설을 시작해 지난 3월 31기 KBS바둑왕전 결승 최종국을 끝으로 KBS 바둑 해설위원 자리를 후배인 박정상 9단에게 넘겼다. 16세이던 1967년 프로에 입문한 노 9단은 1977년 KBS 신춘특별기전에서 우승한 바둑계 원로로 2009년부터 한국경제신문의 바둑기보 해설을 맡고 있다.

그는 “바둑왕전이 끝나고 나면 주요 대국을 중계하기도 했다”며 “1989년 조훈현 9단이 제1회 응씨배에서 우승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 최강으로 꼽히던 녜웨이핑과 결승 5번기(5전3선승제)에서 만나 3국까지 1승2패로 열세였죠. 싱가포르에서 열린 4국을 조 9단이 이긴 뒤 팽팽했던 5국을 롯데호텔에서 중계했어요. 마지막 5국에서 조 9단이 극적으로 이긴 거죠. 감격한 나머지 당시 수백명의 방청객에게 ‘조 9단이 천하를 제패했다. 한국이 바둑 강국이 됐다. 만세삼창합시다’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얼싸안으며 만세를 부르는 거예요. 감동이 몰려왔죠.”

생방송은 언제나 긴장됐다. 첫 경험은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는 “명인전 우승자 조치훈 9단과 조훈현 9단이 1980년 새해 첫날 가진 대국을 KBS가 국내 지상파 방송 사상 첫 생중계했다”며 “2시간 동안 진행된 당시 중계방송은 최장 생중계 기록으로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2005년 타계한 김수영 7단은 TBC 왕자전의 해설자로 유머러스한 멘트와 높은 톤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대중해설의 1인자였습니다. MBC제왕전의 해설을 맡았던 윤기현 9단은 13년 동안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제 1세대는 물러나고 훌륭한 후배에게 길을 터줘야죠.”

그는 이제 후진 양성에 힘쓸 계획이다.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다.

“걸출한 제자를 키우고 싶었는데 여건이 안 되네요. 한창 후진을 키워내고 있는 후배들과 국내에서 경쟁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산둥성바둑협회에서 감독직을 제의받았어요. 산둥성바둑협회장이 ‘바둑에선 기술뿐만 아니라 기품도 중요하다’며 기재 있는 어린이 발굴과 인성교육을 부탁하더군요. 어디서든 제자를 키우면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남은 바둑 인생을 여기에 힘쓸 생각입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