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 찾다가 '집단사고'에 빠진다 !
‘집단지성(Group Genius)’의 시대다. ‘한 명의 전문가보다는 대중들의 의견을 모은 것이 더 나은 판단이 된다’는 집단지성은 경영자들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할 만큼 매력적인 아이디어다. 그래서인지 많은 경영자들이 밀실에서 혼자 내리던 결정을 회사의 주요 임원들과 함께 내리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집단지성은 분명 좋은 방식이다. 하지만 제대로 적용하려면 먼저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하나의 의견을 가진 전문가보다 다양한 의견의 평균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 집단지성의 장점이다. 이런 면에서 모두가 하나의 생각만을 갖는 만장일치는 집단지성의 장점에서 벗어나 있다. 집단지성을 활용해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만장일치의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어빙 재니스 전 예일대 경영대학 교수는 만장일치 결정이 빠질 수 있는 함정으로 ‘집단사고’를 지적한다. 결속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의견일치를 이루려는 의지가 강력해지기 때문에, 점차 다른 의견에 대한 고려를 무시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이처럼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는 쉽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려는 경향의 사고방식이 ‘집단사고’다.

재니스는 일본의 진주만 침공에 대한 예측 실패를 첫 번째 집단사고의 사례로 들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의 전문(電文)을 가로챘으며, 일본이 전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준비는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정부는 즉시 하와이 주둔군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하와이에 주둔한 육군과 해군은 경고를 무시했다. 그들은 일본이 미국의 전면적인 전쟁 참여를 이끌게 될 공격을 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진주만은 공군과 해군 전력이 집중돼 있어 일본의 공격에 대해 이른 시간 내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결국 당시 하와이 주둔군 회의는 집단사고에 발목이 잡혔다. 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일본은 그들의 예상을 비웃듯이 진주만을 폭격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다른 나라가 미국의 영토를 폭격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기업도 집단사고를 피해가지 못한다. 애론 허먼과 후세인 램멀은 스위스의 항공사인 스위스에어의 파산이 집단사고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한다. 스위스에어는 재정적으로 안정된 기업이기에 ‘나는 은행(flying bank)’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2001년 최고경영자(CEO)를 보좌하던 고문집단 규모를 줄이고, 산업전문가들을 점차 배제했다.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남게 됐다. 이들은 배경과 가치관 등이 비슷한 이들을 중심으로 점차 동질화돼 갔다. 과거 성공에 도취해 낙관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매사에 의견 일치를 강하게 추구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CEO가 추진한 과도한 팽창전략에 대해 위험을 지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위스에어는 결국 파산했다.

집단지성 방식을 도입하면서도 집단사고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집단지성의 장점인 다양성을 살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임금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이 성공적인 정치를 펼친 이면에는 집단사고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숨어 있었다.

세종대왕은 어전회의 때마다 예조판서 허조를 참석시켰다. 허조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품을 지녔다. 세종대왕은 그런 허조를 ‘고집불통’이라고 평하면서도 어전회의에 참석하도록 명하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를 통해 대신들이 집단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했던 것이다. 회의에서 반대의견을 말하는 역할을 맡는 일종의 ‘악마의 변호사 제도’를 활용한 셈이다.

‘악마의 변호사’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이 없다면 GM의 전 회장이었던 알프레드 슬론 2세가 사용한 방식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슬론이 집단사고를 막기 위해 만장일치를 얼마나 경계했는지 알려준다. 슬론은 최고경영진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 결정에 대해 의견이 완전 일치됐다고 봐도 좋겠습니까?” 이 말에 참석자 전원이 동의했다. 그러자 그는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다음 회의까지 연기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때까지 반대의견을 더 생각해 보고,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해봐야 합니다”고 말했다.

집단지성을 제대로 활용하면 창의적이면서도 정확한 판단이 가능해진다. 만장일치에 집착하는 집단사고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계평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