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 제공
LG디스플레이 제공
1995년 8월은 LG디스플레이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숱한 난관을 극복한 끝에 대형 액정표시장치(LCD)를 처음 양산한 때이기 때문이다. 1987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의 조그만 연구소에서 LCD 개발을 시작해 경북 구미에 LCD 공장을 세우기까지 꼬박 8년이 걸렸다.

출발은 삼성보다 2년 늦었지만 LG디스플레이는 이후 삼성과 함께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쌍벽을 이뤘다. 특히 1999년 네덜란드 필립스와 합작해 LG필립스LCD를 출범한 뒤부터 날개를 달았다. 거의 2년에 한 번꼴로 생산라인을 추가로 세웠다. 2000년대 들어 생산량이 급속히 늘면서 작년 9월 대형 LCD 누적 생산량이 10억장을 돌파했다. LCD 생산을 시작한 지 17년1개월 만의 일이다.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생산량은 10억3000만장이다. 면적으로 환산하면 1억5000만㎡에 육박한다. 서울 여의도 넓이(835만㎡)의 17배이며 서울시 면적 5분의 1에 해당한다. 여기에 9인치 이하 중소형 LCD를 포함하면 규모는 더 늘어난다. LG디스플레이의 ‘LCD 영토’는 매년 여의도 면적의 2배씩 커지고 있다.

○셀 수 없는 세계 1위 타이틀

LG디스플레이는 세계 LCD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업이다. 2009년 10월부터 3년5개월간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 1분기에도 대형 LCD 시장에서 27.1%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1분기는 전통적으로 비수기로 통하지만, 패널 업체 중 유일하게 올 1분기에 대형 LCD로만 매출 50억달러를 넘겼다. 2, 3위 업체들과는 20억달러 가까운 격차를 냈다. 앞서 작년 4분기엔 사상 최대인 8조742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연간으로도 역대 최대인 29조429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LG의 LCD 시장 제패는 오래 전부터 예견됐다. LG필립스LCD 시절인 2000년에 이미 세계 최초로 20.1인치 TV용 LCD를 개발했고 2002년에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52인치 LCD를 선보였다. 이듬해 55인치 LCD 시장도 제일 먼저 열었다. 2006년엔 100인치 LCD를 처음으로 개발했다.

2008년 필립스와 합작을 청산한 뒤에도 1위 행진을 이어갔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2010년 플렉서블 OLED 패널에 이어 2011년에 세계 최초로 OLED 패널을 개발했다. 작년부터는 OLED 패널 양산에 나서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10년 만에 인정받은 독자 기술

LG디스플레이는 기술 개발 등에서 고정관념을 따르지 않는 파격을 통해 성공을 일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른 업체들이 하는 방법대로 하지 않고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했다.

광시야각 기술인 IPS가 대표적인 예다. 1990년대 중반부터 LCD 업계에선 광시야각 문제가 본격 대두됐다. 여러 명이 동시에 화면을 볼 때 어느 각도에서 시청하더라도 화면 왜곡없이 잘 볼 수 있는 LCD 기술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액정을 수직으로 움직이게 하는 VA 방식을 썼다. 명암비가 뚜렷하고 생산기술을 확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는 다른 길을 갔다. 액정을 수평으로 움직이는 IPS 기술을 선택했다. 소비 전력이 낮고 시야각, 액정 복원력이 높다고 봐서다. 그러나 기술을 제품 생산으로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LG디스플레이는 고객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년을 매달려 상용 기술을 확보했다. 2011년엔 한 발 더 나아간 AH-IPS 기술로 발전시켰다. 액정 분자를 수평이나 수직 방향으로 모두 구동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해상도가 탁월하고 화면 터치에 유리해 태블릿PC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IPS 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진가를 인정받은 셈이다.

LG디스플레이는 3D 패널에서도 ‘마이웨이’를 고집했다. 3D 패널이 급속히 확산되던 2011년만 해도 셔터글라스(SG) 방식이 대세였다. 안경에 특수처리를 해 화면의 입체 효과를 노리는 방식이었다.

LG디스플레이는 SG 방식의 안경이 너무 무겁고 피로를 빨린 느낀다고 보고 다른 방식을 썼다. 셀로판지 수준의 효과만 내는 가벼운 안경을 끼는 대신 화면에 3D 효과를 주는 필름편광패턴(FPR) 기술을 택했다.

FPR 방식은 처음엔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입소문을 통해 FPR이 장시간 시청에 훨씬 편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 3D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2년 만에 시장 판도를 바꾼 것이다.

○주도권 잡은 차세대 패널 시장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LCD는 백라이트가 있어야 제 기능을 한다. 반면 OLED는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백라이트가 필요없다. TV를 훨씬 가볍고 얇게 만들 수도 있다. 문제는 상용화 기술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는 점이다.

LG디스플레이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OLED를 양산했다. 흰색(W)과 적색(R), 녹색(G), 청색(B)의 유기물을 샌드위치처럼 수직으로 앉히는 W-RGB 방식을 사용했다. 수년간 연구 끝에 지난 1월 세계 최초로 55인치 OLED TV용 패널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에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디스플레이가 휘어진 곡면형 OLED TV 패널을 개발해 LG전자에 공급했다.

아직도 양산 방식을 정하지 못한 다른 업체들과 달리 LG디스플레이는 대규모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 파주공장에 3500억원을 들여 8세대(2200×2500㎜) 크기의 OLED를 월 8000장 만들 수 있는 생산라인을 갖췄다. 지난 2월엔 7063억원을 투자해 매달 2만6000장의 OLED를 생산할 수 있는 양산 라인(M2)을 착공했다.

UHD 시장도 선점하고 있다. 작년 9월 풀HD 영상보다 4배 더 선명한 84인치 UHD TV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화면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화소 수가 830만개로 화질 면에서 지상파 방송 수준인 HD급보다 8배 더 선명하다. 대각선 길이가 213㎝로 일반 가정에 많이 보급돼 있는 42인치 TV를 4개 합쳐 놓은 크기다.

HD급이나 풀HD급은 화면에서 사람의 모공이 희미하게 보이는 데 비해 UHD급은 모공뿐 아니라 어린 아이의 솜털까지 볼 수 있을 정도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은 “UHD는 고해상도를 원하는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제품”이라며 “UHD가 TV 해상도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