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주말에 친구들이랑 바다 다녀왔어요?”

에구~ 또 옆 부서 김 대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 사진을 보고 친한 척이다. 메시지를 차단하고 문자를 씹어도 소용없다. 업무시간 내내 들이대는 김 대리의 쪽지로 ‘퀸카’ 정 대리의 메신저 수신함은 늘 한가득이다. 정 대리뿐 아니다.

김 대리가 거의 모든 부서 여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메신저로 음악을 보내는 것은 이미 회사 내 공지사항 수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적당히 해야 말이죠. 불특정 다수에게 떡밥을 던지고 그중 하나만 걸려라 하는 건지. 작업에도 예의와 진심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봄. 바야흐로 사랑과 작업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김 대리처럼 무작정 들이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김 과장, 이 대리는 마음에 담아둔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지만 하염없이 망설일 뿐이다. 어떻게 해야 마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실패하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회사를 다닐지 걱정이 돼서다. 올봄 김 과장, 이 대리들이 사랑을 쟁취하길 바라며 백전백승할 수 있는 ‘작업의 정석’을 모아봤다.

◆내 편을 만들어라

작업의 기본은 ‘정보’. 최 대리는 마음에 두고 있는 마케팅팀의 예쁜 여사원 L과 친해지기 위해 그 주변을 노렸다. L과 가장 친한 동기인 K부터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로 한 것.

최 대리는 틈만 나면 K에게 점심과 커피를 사면서 L의 정보를 입수했다. L의 회식 일정, 동호회 활동 등을 미리 알아낸 후 L이 자주 가는 식당을 일부러 찾기도 하고, 동호회에도 가입하는 등의 노력 끝에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만남을 성사시켰다.

“몇 번의 만남 후에는 제 마음을 눈치챈 K가 더 적극적으로 도와줬어요. L이 좋아하는 음식 등 취향부터 제 행동에 대한 반응까지 알려줘서 작업이 한결 쉬웠죠. 지난 겨울을 L과 따뜻하게 보낸 것도 모두가 K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내 편을 만들다 낭패를 본 경우도 있다. 신입사원 연수지도 선배였던 이 대리는 H에게 첫눈에 반했다. 다른 팀 소속이었던 H에게 무작정 접근할 수도 없는 노릇. 그는 자신이 담당하는 팀 소속이자 H의 단짝인 P와 먼저 친해지기로 했다.

P에게 밥도 몇 번 사고 얘기도 하면서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이 대리. 문제는 P가 이 대리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친해질수록 H에게 더 관심을 보이는 이 대리를 보며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한 P는 ‘이 대리가 바람둥이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사내에 소문을 퍼뜨렸다.

“결국 정말로 좋아하던 H에겐 말 한 번 못해보고 회사에는 바람둥이라고 소문만 났네요. 이후로는 회사에서 우연히라도 H를 만나면 제가 먼저 피합니다.”

◆힘과 권력을 이용하라

직급을 이용해 작업 상대를 갈구는 것도 때론 먹혀드는 작업 방법 중 하나다. 공적인 업무 수행 중에 생기는 실수에 대해 따끔하고 분명하게 혼내되, 사적인 영역에서는 따스하고 포근하게 대해주는 방법이다.

최 팀장은 지난해 사내 연애로 14세 연하의 신 대리와 결혼에 성공했다. 최 팀장이 많은 나이 차에도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팀내 최고 권력자의 위치를 최대한 활용한 덕분이다.

인사팀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신 대리가 기획팀으로 오자마자 첫눈에 반한 그는 유독 그녀에게 혹독하게 대했다. 뭐든 꼬투리를 잡아 야단쳤다.

신 대리의 스트레스가 한계에 달할 즈음, 그는 다음날 회의 준비로 야근을 하던 그녀를 불러냈다.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그간 보여준 모습과는 정반대로 친절하게 기획팀 업무에 대해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자 신 대리는 감동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 후론 작업이라고 할 것도 없이 일이 술술 풀렸죠. 직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무엇보다 능력이니까요.”

대기업 영업팀의 김 대리도 이런 정석을 따랐다. 같은 부서 Y를 마음에 두고 있던 김 대리는 Y가 잘못 처리한 일을 찾았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Y가 눈물을 쏙 뺄 정도로 따끔하게 혼을 낸 후 메신저로 화해하자며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제안한 것. 몇 번 거절하던 Y도 ‘같은 부서에서 어색하게 지내면 서로 안 좋지 않겠느냐’는 말에 결국 따라나섰다. 주말에 만나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함께 먹으면서 친해진 두 사람은 결국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정성은 언제나 통한다

같은 부서 사원인 K를 좋아하는 이 대리. 그녀와 친해질 기회만 노리던 이 대리는 회사 카풀 모임에 가입했다. 이 대리의 집은 경기 평촌, K는 잠실. 그러나 이 대리는 친구와 함께 잠실에서 자취한다고 부서 직원 모두를 감쪽같이 속이고 K와 카풀을 신청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잠실에서 K를 태워 여의도로 함께 출근한 지 6개월. 퇴근길에 할 말이 있다고 K를 불러낸 이 대리는 사실은 평촌에 살고 있다며 그녀에게 고백했다.

“처음에는 놀라는 것 같았지만 6개월 동안 매일 아침 데리러 왔던 정성에 감동을 받더군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최고의 작업 방법입니다.”

기획팀 그녀가 인디밴드 음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홍 대리. 홍보팀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아침 사내음악 방송 때 인디음악을 자주 틀었다. 다른 사원들은 곧잘 뜬금없는 선곡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녀의 만족도는 무척 높았다. 우리 회사에 이런 센스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얘기를 동료 여직원들에게 자주 한다는 것. 홍 대리는 자연스럽게 선곡자가 본인이라는 것을 알려 친해질 수 있었다.

◆기다리는 것도 기술이다

대기업 최 대리는 흠모하는 옆 부서의 여자 후배를 만나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후배가 바쁜 부서에 있어서 야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루는 저녁을 먹고 회사에 가방을 가지러 잠시 들어왔는데 역시나 야근 중인 그녀가 눈에 띄었다. 메신저로 “혹시 오늘 몇 시까지 야근이냐. 나도 야근인데…”라고 거짓말을 했더니 “새벽 한두 시까진 해야 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 대리는 “나도 오늘 일이 많아서 그쯤까지 할 것 같다”며 비슷하게 마치거든 집에 같이 가자고 답을 보냈다. 그녀는 의외로 흔쾌히 오케이 했고, 최 대리는 새벽 두 시까지 ‘자진 야근’을 했다. 마침내 그녀와 같은 택시를 타고 집에 가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졌고, 몇 번에 걸친 자진야근 ‘쇼’ 덕에 결국 작업에 성공했다.

강영연/고경봉/윤정현/김일규/정소람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