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의 빌딩들<44>]-유화빌딩…강남개발 전설 흔적 남은 800억대 건물









이창호기자(lch9856@skyedaily.com)



기사입력 2013-03-05 00:03:27































지하철2호선 삼성역 인근은 테헤란로의 끝자락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건물들이 눈에 띈다. 파크하얏트의 24층 대형건물 옆에 있는 10층짜리 유화빌딩이 그 예다.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이 건물은 지하 3층, 지상 10층의 중형건물이다. 연면적이 9577.14㎡(2897.1평)로 테헤란로에 인접한 건물들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다. 건물이 서 있는 대치동 995-16 부지의 면적은 1485.8㎡(449.5평)이다. 인근 부동산은 이곳 토지의 시세를 3.3㎡당(평당) 1억8000만원 가량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르면 건물이 서 있는 토지의 가격은 800억원대에 이른다. 이 건물은 한때 경매로 넘어갈 위기를 겪기도 했다. 유화상사의 대주주인 김모씨는 고급 수제햄버거인 크라제버거로 유명한 크라제인터내셔널의 대주주이기도 한데, 크라제인터내셔널의 부채로 인해 이 건물에 근저당권이 설정되고 경매개시까지 등기됐다가 경매결정이 말소됐다. 김모씨는 유화상사나 크라제인터내셔널보다 영동백화점의 이전 사주로 더욱 유명하다. 강남 최초의 백화점으로 유명한 영동백화점은 1993년 신세계에 위탁경영을 맡길 때 까지 강남지역 개발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1988년 영동백화점의 사장으로 취임한 김모씨는 여자 연예인들과 마약을 함께 한 혐의로 1990년 재판을 받기도 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김모씨가 영동백화점 사장으로 취임할 수 있었던 것은 김모씨의 부친이 영동백화점을 세운 김형목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인 김 사장은 60년대 제지사업과 해운사업으로 돈을 벌었고 1968년 부동산 매매와 임대업을 목적으로 하는 강남개발이라는 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강남지역 개발을 내다보고 강남의 영동지역 일대의 땅 10만여평을 사들였다는 얘기도 회자된다. 그러나 아들인 김모씨가 영동백화점의 경영권을 이어받은 뒤 수년만에 회사를 매각해 영동백화점의 역사는 10년만에 사라졌다. 영동백화점이 폐업하면서 강남에서 가장 유명한 땅부자라는 김 사장의 강남개발 역사 역시 지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스카이데일리가 강남 최대 땅부자의 역사가 전해지는 유화빌딩을 취재했다.<편집자 주>






단독-강남갑부 상징 영동백화점 영욕 살아 있었다





단독-강남갑부 상징 영동백화점 영욕 살아 있었다


▲ 삼성역 인근에 위치한 유화빌딩(위·위치도)은 전 영동백화점 사주가 대주주로 있는 유화상사가 소유한 건물이다. ⓒ스카이데일리 <그림=최은숙>

테헤란로 변에는 20층이 넘는 대형빌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하지만 테헤란로의 끝자락인 삼성역 인근은 다른 지역에 비해 건물 높이가 낮다. 높은 건물들 사이로 현저히 높이가 낮아보이는 건물들이 눈에 띈다.





지하철2호선 삼성역에 바로 붙어 있는 파크하얏트 건물은 24층짜리 대형건물이다. 바로 옆에는 10층짜리 낮은 건물 하나가 나란히 서 있다.





한 눈에 봐도 이색적인 이 건물은 농협 등이 입주해 있다. 법무법인과 회계법인 등도 이 건물을 쓰고 있다. 이 건물은 유화상사가 보유한 유화빌딩이다.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이 건물은 지하 3층, 지상 10층의 중형건물이다. 연면적이 9577.14㎡(2897.1평)으로 테헤란로에 인접한 건물들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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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크하얏트서울 호텔 옆에 있는 유화빌딩은 10층 건물로 테헤란로의 다른 건물들에 비해 높이가 낮다. ⓒ스카이데일리

건물이 서 있는 대치동 995-16 부지의 면적은 1485.8㎡(449.5평)이다. 인근 부동산은 이곳 토지의 시세를 3.3㎡당(평당) 1억8000만원 가량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르면 건물이 서 있는 토지의 가격은 800억원대에 이른다.





건물의 소유주는 이 건물 8층을 쓰고 있는 유화상사다. 유화상사는 1978년 이곳 땅을 매입했으며 1988년 유화빌딩을 지었다.





유화상사 보유 건물, 30억원 근저당에 800억원대 건물 경매 코앞까지 가





유화상사는 부동산임대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관계사로는 프리미엄 수제버거로 유명한 크라제버거를 만든 크라제인터내셔널이 있다.





유화상사의 지분 60%를 갖고 있는 대주주인 김모씨는 크라제인터내셔널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지난해 4월 공시된 크라제인터내셔널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김모씨는 이 회사 지분 21.7%를 보유하고 있다. 또 김씨가 대주주로 있는 강남개발이란 회사도 14.5%의 지분을 보유해 김모씨와 관련된 지분이 36.2%에 달한다.







단독-강남갑부 상징 영동백화점 영욕 살아 있었다


▲ 유화빌딩에는 건물 소유주인 유화상사 등이 입주해 있다. ⓒ스카이데일리

이 때문에 건물에는 크라제인터내셔널의 채권에 의해 근저당이 설정되기도 했다. 토지와 건물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신세계푸드는 지난해 5월 크라제인터내셔널 사옥에 근저당을 설정하면서 공동담보로 유화빌딩에도 근저당을 설정했다. 채권최고액은 30억원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유화빌딩에 대한 임의경매개시를 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달 신세계푸드의 신청 취하로 경매개시결정등기가 말소됐다. 부동산들에 따르면 크라제인터내셔널 측이 신세계푸드에 대한 채무를 해결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유화빌딩에는 다수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 빌딩전문 부동산들은 이들 근저당들이 건물 입주사들의 전세금이나 채권담보 등이라고 보고 있다. 전세금으로 추정 가능한 근저당을 제외하더라도 건물에 설정된 근저당권 채권최고액의 합이 적지 않다.





유화상사 대주주 김모씨는 영동백화점 소유주로 유명해





유화상사는 김모씨가 대주주이면서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법인 등기부등본에는 회사의 목적이 섬유제조와 가공, 상품 매매, 의류제조, 부동산 매매 및 임대업 등으로 기재돼 있다.





김모씨는 그러나 유화상사의 대표이사보다 훨씬 유명한 직함을 가진 적이 있다. 강남 개발의 상징이었던 영동백화점의 사장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영동백화점은 1983년 지금의 강남구청역 사거리에 지어진 강남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당시에는 역세권이 아니었고 주변은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주택가였지만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됐다.







단독-강남갑부 상징 영동백화점 영욕 살아 있었다


▲ 유화빌딩 앞 거리 모습. ⓒ스카이데일리

1988년 영동백화점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오른 김모씨는 여자연예인과 마약을 복용했다 적발돼 1990년 재판을 받는 등 수난을 겪는다.





영동백화점도 경영난에 빠져 1993년 신세계백화점에 위탁경영을 의뢰하게 된다. 이후 나산백화점에 매각돼 1995년 나산백화점으로 재탄생했으나 IMF로 나산그룹이 부도가 나고 백화점도 안전문제로 문을 닫았다.





이후 10여년간 방치된 영동백화점 터는 경매로 미국계투자회사에 넘어가 2011년 POBA 강남타워가 지어진다.





1958년생인 김모씨는 영동백화점 사장으로 부임하던 당시 나이가 31세에 불과했다. 김모씨의 부친이 영동백화점의 설립자인 김형목 사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김형목 사장은 1912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북청 물장수’로 유명한 바로 그 북청 출신이다.





김 사장은 1950년대 사업을 통해 부를 이뤘다.





이후 60년대에는 제지회사에 투자하고 해운사업에 나섰다. 1968년에는 부동산개발회사 강남개발을 설립하기도 했다. 강남일대가 개발될 것이라는 기대 하에 부동산 사업을 준비하는 혜안을 보였다는 평판이 당시 많이 돌았다.





일설에는 김 사장이 논밭이었던 강남지역 일대의 땅 10만여평을 사들여 강남 최대 땅부자로 떠올랐다고도 한다. 땅의 넓이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김 사장이 강남지역 개발을 예견하고 적극적으로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얘기는 두루 회자돼 있다.







단독-강남갑부 상징 영동백화점 영욕 살아 있었다


▲ 영동백화점 터에는 POBA강남타워가 들어서 있다. 강남개발의 상징과도 같았던 영동백화점은 이제 역사 속 한 페이지로 남았다. ⓒ스카이데일리

1972년에는 영동고등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또 건설회사를 통해 강남일대에 아파트를 공급하는 등 강남개발에 직접 뛰어들기도 했다.





강남에 최초로 백화점을 세운 것 역시 김 사장의 혜안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아들인 김모씨는 그러나 영동백화점의 경영권을 이어받은 뒤 수년만에 회사를 매각해 영동백화점의 역사는 10년만에 사라졌다. 영동백화점이 폐업하면서 강남에서 가장 유명한 땅부자라는 김 사장의 강남개발 역사 역시 지역사의 한 페이지에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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