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존 케리 상원의원에게 바통을 넘기고 오는 20일께 물러난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 1순위로 꼽혀 주목받고 있는 클린턴 장관은 지난 4년간 외교수장으로서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비즈니스위크는 최신호에서 ‘미국 최고의 비즈니스 로비스트’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지난해 12월3일. 클린턴은 국무장관으로서 79번째이자 마지막 해외출장길에 올랐다. 그는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짬을 내 체코를 방문했다. 페트르 네차스 체코 총리를 만나 체코 원전 프로젝트에 입찰한 웨스팅하우스일렉트릭을 ‘잘 봐달라’며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100억달러 규모의 입찰은 웨스팅하우스와 러시아 국영기업 컨소시엄인 MIR 간의 2파전이었다. 클린턴은 “에너지를 러시아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압박했다. 입찰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대니 로데릭 웨스팅하우스 최고경영자(CEO)는 “클린턴 장관의 한마디가 체코 정부에 큰 영향을 줬다”며 낙관했다.

클린턴이 발벗고 지원한 대형 비즈니스 딜은 10여건에 이른다. 2009년 러시아의 보잉737 50대(37억달러) 구매, 2011년 일본의 록히드마틴 전투기(72억달러) 구매 등이 대표적이다. 작년 7월 미국이 미얀마의 제재를 해제한 직후 로버트 호매츠 국무부 차관은 구글 마스터카드 다우케미칼 등의 임원과 함께 미얀마를 방문했다. 미국 기업들이 동남아의 마지막 신시장으로 불리는 미얀마 관료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

클린턴은 역대 국무장관 중 최장 해외순방 기록을 세웠다. 재임 4년간 112개국을 방문하면서 401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지구를 서른여덟 바퀴 도는 거리인 153만9712㎞를 움직였다. 아랍혁명, 이란 핵개발, 리비아 미 영사관 피격사태 등 국제안보 현안도 있었지만 해외 순방의 상당 부분은 비즈니스 행보였다. 해외순방 때 기업인 동행을 하지 않는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과는 대조적이다.

워싱턴 정가에선 클린턴이 ‘비즈니스 외교’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이 나온다. 클린턴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나라의 기업들이 공정한 경쟁을 한다면 정부가 나서서는 안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미국 기업과 근로자들이 불이익을 당하도록 놔둘 수 없다”고 했다. 비즈니스 외교에 나선 이유다.

미국에선 해외 입찰을 하는 기업들은 모두 국무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계약이 미국 근로자에 보탬이 돼야 한다. 또 미 기업 2개 이상이 경쟁하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 국무부 ‘승인’이 떨어지면 주재국 대사가 로비를 총괄한다. 수십억달러 이상의 ‘빅 딜’은 클린턴이 직접 챙긴다.

클린턴은 6만9000명의 국무부 직원들에게 ‘CEO 대사’로 활동하라고 주문하면서 “대사관의 최우선 과제가 미국 기업들의 계약수주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국무부 내 수석이코노미스트 직제를 신설하고 정치·안보업무에 비해 하찮은 일로 간주됐던 경제분야 외교관을 우선 승진시키는 파격인사도 단행했다.

‘딜 메이커’로서 클린턴의 성과는 퍼스트 레이디, 상원의원,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등을 거치면서 쌓아온 개인적인 인맥이 크게 작용했다. 클린턴이 물러난 뒤에도 ‘힐러리 스타일’의 국무부가 지속될지 주목된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