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경제성장은 끝났다. 아니 결딴났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 경제에 대한 진단이 아니다. 인간이 석유를 사용하기 시작한 화석연료 혁명 이후 150여년 동안 누려온 성장가도가 끝났다는 얘기다. 탈탄소연구원의 수석연구원인 저자는 석유 에너지 고갈 문제에 관한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 《파티는 끝났다》《미래에서 온 편지》 등을 통해 국내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그는 이 책에서 세계 경제가 단순한 경기 후퇴가 아니라 성장의 종말을 맞이했음을 다양한 근거와 함께 논증하면서 새로운 경제 현실에 인류가 어떻게 대처하고 적응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2008년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도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상환 불가능한 수준의 엄청난 공공·민간 부채와 부동산 거품 붕괴를 비롯한 미국 경제의 심각한 문제가 경제 성장의 직접적인 위협 요인이라는 금융 전문가들의 진단은 틀렸다고 단언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더라도 금융시스템 외부의 요인들로 인해 지금까지와 같이 경제가 성장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저자는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화석연료와 광물을 비롯한 주요 자원의 고갈이 첫째요,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을 포함한 자원의 채굴과 이용으로 인한 부정적인 환경 영향의 확산이 둘째다. 셋째 요인은 기존의 통화·금융·투자 시스템이 자원고갈과 치솟는 환경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난 20년 동안 쌓인 막대한 정부·민간 부채가 도를 넘어 발생하는 금융붕괴다.

성장의 환경적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2010년 미국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딥워터호라이즌호의 원유 유출사고가 대표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멕시코만 심해에서 석유를 시추한 것은 값싸게 채굴할 수 있는 내륙지역에서 유정을 새로 찾아낼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해탐사는 이미 상당히 진척됐고 거대한 탄화수소 매장지가 비어가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하지만 딥워터호라이즌 원유 유출사고로 엄청난 환경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멕시코만 지역 어업 피해를 변상해야 한 BP는 이로 인해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고 주가가 떨어졌다.

저자가 주장하는 성장의 종말은 이미 30년 전에도 예고됐다. 1972년 메사추세츠공대의 젊은 과학자 네 명이 발표한 ‘인류의 위기에 관한 프로젝트’ 보고서를 바탕으로 엮은 《성장의 한계》는 브레이크 없는 경제 성장이 지구 환경에 미칠 영향을 진단하면서 ‘지속 가능한 미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세계 인구 증가와 소비 추세, 주요 자원 매장량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한 결과 2010~2050년 성장의 종말이 올 것으로 예측했다.

경제성장론과 수십년 동안 논란을 빚어온 성장종말론이 최근 들어 힘을 받고 있는 것은 2008년 이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글로벌 위기와 저성장 기조의 확산 때문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다양한 분석과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저자는 각각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유한한 세상에서 무한한 성장을 추구하는 시스템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으므로 무한성장을 전제로 한 경제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자원고갈로 인한 비용 상승을 기술혁신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날카롭다. 혁신을 통한 대체와 효율로 성장을 재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라는 것. 옥수수에탄올을 만들 수는 있지만 재배에서 수확, 증류에 이르기까지 들어가는 에너지가 에탄올이 연소하며 만드는 에너지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성장이 멈춘 후 세계의 모습은 어떨까. 저자가 제시하는 미래는 기존 경제시스템의 붕괴, 주가와 부동산 가격 급락, 은행과 기업의 파산, 빈부격차 심화와 갈등 등이다. 특히 상환 불가능한 수조달러의 채권에 발이 묶여 국가 경제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관리하게 되고 경제적·사회적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다만 경제 성장의 종말이 세상의 종말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그러자면 양적 팽창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경제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게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이다. 그는 특히 지역 차원의 공동체 복원력을 높여여 한다고 강조한다. 연료가 희소해지면서 국제교역이 줄면 우리 삶이 국지화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웃과 손잡고 사는 지혜를 더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의 주장이 경제성장론의 부정적인 측면을 너무 부각시킨 감은 있지만 인류의 미래를 위해 귀담아 들을 필요성은 충분할 것 같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