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기농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원경선 풀무원농장 원장이 지난 8일 타계하면서 식품업계의 장수 원로들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고인은 향년 100세로 별세하기 이전까지 큰 질병 없이 바른 먹거리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열정적으로 펼치며 정정함을 과시했었다.

식품업계에는 유난히 장수 기업인이 많다. 국내 식품기업 창업자 가운데 현존하는 최고령은 1917년생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96)이다. 정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콩의 효능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놓지 않고 있다. 국내외 최신 연구논문을 원서로 챙겨 읽고, 정식품 연구원들을 서울 평창동 자택으로 불러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매일 아침 30분씩 반신욕과 산책으로 건강을 유지하며 EBS 라디오를 통해 영어 공부도 한다.

1919년생인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94)은 아들인 전인장 회장에게 경영을 맡긴 작년 초부터는 회사에 나오지 않고 자택에 머물고 있다. 집무실 4개 벽면 중 3개 면을 책으로 가득 채울 정도로 ‘독서광’인 그는 집에서도 책을 읽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1972년 자신이 직접 일군 강원 대관령삼양목장을 틈틈이 찾아 맑은 공기를 쐬는 것이 전 명예회장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고 회사 측은 전했다.

1922년생인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91)은 식품업계 원로 중 외부 활동이 가장 왕성한 인물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을 6번, 한국식품공업협회(지금의 한국식품산업협회) 회장을 3번 연임하는 등 직함이 20여개에 달한다. 매일 서울 충무로 사옥에 출근해 월 1회 임원회의를 주재하고 신제품 개발에도 적극 의견을 낸다. ‘집무실 방문을 닫지 않는 회장님’으로 통하는 그는 샘표식품 임직원의 경조사를 직접 챙길 정도로 끈끈한 사내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통주 대부’로 불리는 배상면 국순당 회장(89)은 1924년생이다. 지난해부터 출근은 거의 않고 있지만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우리술 교육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이 높다. “농민들에게 양조법을 가르쳐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론을 펴 온 그는 이런 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를 회사 경영진에 자주 묻는다고 한다.

1927년생인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86)은 매일 오전 10시 서울 잠원동 본사에 출근해 오후 4시 퇴근한다. 출퇴근 뿐만 아니라 기상, 취침 시간까지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윤 회장의 건강 비결이다.

1930년생인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83)도 회사에 꾸준히 출근하고 있다. 아들 함영준 회장이 회사를 넘겨받아 보폭을 넓혀가고 있으나, 함 명예회장도 주요 경영지표는 직접 챙기고 있다. 최근에는 사원 복지수준을 높이는 데 관심이 많다는 후문이다.

1932년생 신춘호 농심 회장(81)은 경영 일선을 진두지휘하며 활발한 기업활동을 보이고 있다. 주요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을 꼼꼼히 챙기는 것으로 유명한 신 회장은 새해 농심의 경영지침을 ‘도전’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출시한 먹는샘물 ‘백두산백산수’와 고급 라면 ‘신라면블랙’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한편 조만간 출시할 커피믹스 신제품을 안착시키는 데 주력한다는 구상이다.

식품업계에서 고령임에도 정정한 기업인들이 많은 이유는 건강한 식습관을 몸소 연구, 실천한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식품의 정 명예회장은 매일 3팩의 베지밀을 꾸준히 마시면서 당뇨 증세가 크게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샘표식품의 박 회장은 식초의 유익함을 강조하는 ‘건강식단 전도사’로 유명하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